[데스크라인]정리하는 시간

 정신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신정아 사건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대선정국의 회오리 속에 모두 허공에 뜬 채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다. 본지도 이번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게 보냈다. 창간 25주년을 준비하면서 부끄럽든 자랑스럽든, 전자신문의 지난 25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정립하는 생각하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참여정부도 이제 막바지다. 일을 벌이기보다는 정리해야 할 때다. 차기정권이 달콤한 열매를 딸 수 있도록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이번주 잇따라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보고회와 전자정부혁신포럼이 갖는 의미가 큰 이유다. 대·중소기업 상생과 전자정부는 참여정부 5년 동안 가장 강조하고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정책이다. IT산업계에서도 여기에 SW산업육성을 포함시켜 참여정부의 성공적인 정책으로 꼽고 있다.

 대통령과 그룹총수들이 함께 모여 상생협력을 외친 게 이번까지 모두 다섯 차례다. 그러나 그림은 좋았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미지근하다. 노대통령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보고회에서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원인은 대기업의 실천의지 부족 때문일 것이다. 현장에서는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또 대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경제구조 속에서 대기업 간 상생이 대·중소기업 상생의 전제조건임에도 아직도 경쟁만 있을 뿐 협력은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반도체와 휴대폰·디스플레이생산국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련 장비와 소재를 생산하는 1등 기업이 없다는 게 대표적 사례다. 삼성에 공급하는 기업은 LG에 납품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협력업체 운용정책이 중소기업을 영세화시키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LCD관련장비의 표준화와 함께 장비와 부품의 교차 구매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 어느 정책보다도 중소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는 반도체나 휴대폰 등 전 산업으로 대기업 간 상생을 유도하도록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87년 행정전산망 구축으로 시작된 전자정부는 참여정부 들어 부처 간 연계 및 통합을 강화하는 내용의 31대 로드맵으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전 세계 전자정부를 놓고 한 외부의 평가에서도 우리나라는 맨 앞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전자정부의 성공적인 구축은 단순히 투명한 정부와 국민생활의 증진이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의 문화와 IT를 수출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결코 의미가 작지 않다. 우리의 전자정부시스템이 구축되면 한국의 관습과 문화가 그 나라에 이식된다. 일례로 우리나라 전자정부시스템이 구축된 나라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환경에서 전자정부서비스를 받게 된다. 또 중앙정부의 표준은 곧바로 기업의 표준으로 정착된다. 우리 IT산업계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우리 국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데 만족하기보다는 이를 어떻게 수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정책이 더해져야 한다.

 IT코리아를 SW코리아로 바꿔보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희망은 이제 이뤄지기 힘든 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아직까지 세계에 내놓을 만한 SW기업이나 제품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SW산업육성에 많은 많은 공을 들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W분리발주에서부터 대기업 참여제한제도, 공개SW육성책 등 이미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SW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모두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도 실천이 문제다. 국산SW의 무한한 신뢰와 함께 SW업계 스스로 품질개선 노력이 정부의 정책에 더해질 때, 노 대통령의 희망은 언젠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무한정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준비의 시간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확고한 차세대성장엔진인 IT산업의 육성발전을 위한 정책적 의지와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정리작업이 의미 있게 다가온 일주일이다.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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