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4)]상상을 현실로

인류가 꿈꿔온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영원한 꿈은 영원히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로봇과 유비센서네트워크(RFID/USN)는 인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1962년 GM이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주물을 붓는 데 로봇팔을 투입한 이후 자동차·기계산업을 중심으로 24시간 일하는 산업용 로봇이 크게 확산됐다. 가정에는 세탁기와 진공청소기 등 일손을 줄이는 가전제품이 보급됐다. 가정과 직장에서 기계가 인간을 돕는 20세기의 모던한 라이프스타일이 구현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각자들이 꿈꾸던 로봇혁명의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사고능력을 흉내내는 컴퓨터를 기점으로 정보통신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컴퓨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진화를 거급한 끝에 오늘날에는 수억대의 컴퓨터가 거미줄처럼 얽힌 지구차원의 인공지능 네트워크 망으로 발전했다. 이 정보통신혁명의 여파는 21세기 로봇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카렐 차페크가 꿈꾸던 이성을 갖춘 기계인간. 즉 물리적 노동력과 지능적 사고를 함께 갖춰 사람에게 거의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로봇이 등장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로봇이 인류의 유토피아 생활을 위한 생산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꾼이라면 유비센서네트워크(RFID/USN)는 기반 인프라다. RFID/USN은 각종 첨단 센서를 동원한 거미줄 네트워크로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와 환경을 구현해준다. 이미 u시티라는 구체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한 RFID/USN은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교육·상하수도·교통·환경·산업 등 모든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소하게는 주방의 음식물이 끓어 넘쳐 타거나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스스로 제어하고 방지해주는 것에서부터 상수도의 오염이 도를 지나칠 때엔 즉시 경고를 발송하거나 알아서 정화시킨다. 토네이도의 기습은 물론이고 스나미 정보까지도 미리 예고해주고 나아가 방향을 틀거나 사멸시키는 것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로봇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한국경제는 최근 몇 년 새 급부상한 중국경제의 추격 앞에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반도체·가전 등 한국경제를 이끄는 간판산업을 대체할 성장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지능형 로봇이 지목된 것이었다. 한국의 로봇열풍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경제난국을 돌파하는 데 첨단 로봇산업이 한몫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은 지금 로봇으로 노동이 사라진 멋진 신세상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에 맞춰서 새로운 로봇제품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위치인식이 가능한 청소로봇이 대표적 사례다. 2세대 청소로봇제품은 룸셀렉터라 불리는 적외선 비콘을 방마다 설치해서 거실과 주방·침실을 선택해서 바닥청소를 할 수 있다. 한 번 청소한 구역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항법기능이 없는 기존 제품보다 청소효율이 두 배는 높다. 이러한 항법기능을 갖춘 청소로봇은 미국과 한국이 동시에 출시한 상황이다.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자동청소를 꿈꾸는 한국주부의 상상력이 청소로봇 수준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공공시설과 레스토랑에서 사람을 대신해 안내해주는 서비스 로봇도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외식업체 시즐러와 빕스가 로봇기반의 고객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용 로봇은 한국몬테소리가 이달부터 전국 유치원에 유진로봇·다사로봇의 로봇을 공급하기 시작해 활기를 띠고 있다. 보안로봇은 교육시설 경비와 문화재 관리용도로 이미 투입됐고 주요 공공기관과 경비보안업체도 로봇기반의 서비스를 준비한 상황이다.

오디오·TV·영상전화기에 로봇의 기동성을 결합시킨 멀티미디어 로봇도 한국적인 상상력이 로봇기술에 투입된 대표적 사례다. 우리 기술은 DMB·MP3P를 내장한 소형 로봇을 연말까지 출시할 예정이다. 작은 TV에 바퀴가 달려서 집 안 어디서나 주인을 따라다니며 분위기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마이크로로봇도 노년층의 주거생활을 돕기 위해서 바퀴 달린 TV로봇을 준비하고 있다. 영상통화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 로봇은 로보쓰리가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오는 2030년대의 로봇세상을 상상해보자. 통신망과 컴퓨팅 성능이 지금보다 천 배 이상 높아지고 USN이 곳곳에 구축된 덕분에 로봇의 활동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HD급의 영상통화가 2010년대 후반이면 일반화되고 더욱 저렴해진 통신비용 덕택에 3차원 홀로그래픽을 이용한 2020년대까지 가상대화도 가능해진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실제인지 가상영상인지 헷갈릴 정도의 정교한 공감각적인 통신문화가 열리는 것이다. 로봇은 이러한 기술발전에 힘입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를 굳힐 전망이다. 현재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이용한 대인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만 앞으론 원격지에서 통신자를 직접 대변하는 아바타 로봇을 이용해 현실세계서도 삶의 영역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로봇의 인공지능도 이즈음이면 괄목할 수준에 이르러 사람과 간단한 대화와 논리적 추론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이로 인한 차세대 자동화의 물결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현재의 로봇기술에 우리의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한국인이 희망하는 25년 이후 로봇세상의 꿈들은 생각보다 일찍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RFID/USN

RFID는 사물의 정보를 전파로 보내 사람과 소통시키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1980년대 아날로그 세상에서 조연에 그쳤던 휴대폰과 인터넷이 1990년대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앞으로 20년은 RFID의 세상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RFID가 현재의 바코드 라벨처럼 사물에 많이 부착되면서 사람과 사물 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RFID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RFID는 산업적으로도 유통 물류비 절감과 조달체계 효율화 등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매장에서는 지능형 카트가 도입돼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카트를 밀고 계산대를 통과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계산된다. 이미 월마트가 파레트 단위의 RFID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델·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도 RFID를 적용하고 있다.

25년 이후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자가 수요용 RFID가 생산될 전망이다. RFID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손쉽게 가정에서도 RFID를 만들 수 있는 가정용 RFID 제조기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RFID 리더 보급 역시 휴대폰에 내장되는 형태로 보급될 것이며, 대학 및 대학원에서도 RFID과가 별도로 신설될 것이다. 먼 미래에는 이와 함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센서와 센서가 네트워크를 구성해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USN가 인간의 삶의 질을 제고시키는 중요 생활환경이 될 전망이다.

RFID 기반의 유비쿼터스 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들어서면서 언제 어디서나 책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종로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앞으로는 서초동 중앙도서관에서 반납할 수 있게 된다. 책에 부착되는 RFID칩에 도서관 코드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 대형 교량 및 심해 등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위치 정보도 USN을 이용해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