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새 봄,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이제서야 고백이지만, 내 나이 서른 둘이었을 적에 밤잠을 설치게 했던 대상이 있었다. 첫사랑에 빠진 지 10여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마음을 뺏긴다는 것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다음날 그와 함께 보낼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 잠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였고, 창 밖을 바라볼 때도 그의 생각으로 가득찼다.

 약 8년간의 기자생활을 박차고 나와 ‘창업’이라는 걸 했을 때 회사를 생각하는 내 맘은 흡사 연애할 때와 같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사실 ‘번듯한’ 직장과 그 나름대로 인기직이었던 ‘기자’를 그만두고 홍보대행사를 시작하려는 나를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조차도 주변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는 합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자 입장에서 홍보대행사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있지만, 솔직히 고객에 어떻게 접근하고 설득해야 하는지를 몰랐으니 말이다. 그 흔한 사업계획서 하나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집기라고는 덜렁 책상과 의자 3개를 들여 놓고는 너무 막막해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겁이 났던 듯하다.

 회사는 그런대로 성장했다. 직원도 늘고 홍보 분야에서는 제법 이름도 얻었다. 사람들은 내가 ‘저지른’ 용감한 결단에 대해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뛰어나다는 찬사를 던져 주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칭찬이기보다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스스로 깨치기 위해 움직인 노력에 대한 인정이라는 생각에, 그 단어도 어려운 ‘기업가 정신’이라는 칭찬을 무슨 벼슬이나 되는 양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나중에 MBA 과정에서 ‘기업가 정신’ 강의를 들었는데,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하고 정의해야 할 내용을 가르치는 과목이었다. 여기에 따르면 사업 내용의 신선함보다는 전체 시장 규모가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고,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도 반드시 가늠해야 할 요소라고 한다. 특히 본인이 시작하려는 회사가 왜 경쟁력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강의 마지막에는 팀별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하나씩 찾아내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강의시간에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 강의를 들으며 자연스레 창업의 경험을 떠올렸던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을 따져보고 과연 ‘감히’ 사업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과목은 과거 나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주었던 셈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사업이 아니더라도 무엇엔가 도전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에 한걸음 내딛는 용기는 논리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끌림이라고 아직도 믿는다. 도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몸과 마음이 열중하는 것일 텐데, 마음이 가지 않으면 열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내 30대의 연애는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식구가 늘고 고객이 늘고 점차 자리를 잡아갈수록 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굳이 ‘연애 심리’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마치 오랫동안 용돈을 줘가며 뒷바라지했던 남자친구가 사법시험에 패스하고 나니, 괜히 주눅이 들어 맘 고생을 하는 소심한 여자의 고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결국 나는 경영하는 법을 좀 더 잘 배우기 위해 내가 창업한 회사를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도전이 나를 성장시킨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믿는다. 순간에 열중했던 경험은 그만큼 깊이 있게 고민하고 길을 찾아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낼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다시 밤마다 내 꿈을 점령하는 상대가 생겼다. 불혹을 넘긴 이 나이에 말이다. 어느 날은 혜성처럼 나타나 성공을 거머쥐는 꿈을 꾸다가도,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전하는 악몽도 꾸게 된다. 여전히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윤중로의 벚꽃처럼 화사하게 내 맘을 사로잡는 이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늘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그 도전의 성패와 상관없이 무엇엔가 열중했던 기억이 우리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지선 미디어U 대표 jisundream@gmail.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