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나를 가다]2부 치솟는 용, 중국①소비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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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은 온통 자신감으로 떠들썩하다. 베이징 상하이 홍콩의 거리는 전통적인 모습보다 현대적 도시와 국가이미지를 원하는 중국정부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을 넘어서 세계의 소비 블랙홀이 됐다. 중국은 덩샤오핑시대에 만든 3단계 발전론, 이른바 ‘원바오(溫飽)→샤오캉(小康)→따퉁(大同)’경제 단계론 가운데 샤오캉 중간단계에 와있다. 지난 2003년 1인당 GNP 1090달러를 돌파하면서 ‘춥고 배고픈 문제를 해결(원바오)했다. 이미 매년 9%대의 경제성장으로 2020년 이후의 따퉁시대로 내닫고 있다. 올 수출액은 한국의 3배인 1조달러다. 60만 외자기업에 대한 세금 특혜는 줄고 ‘흑묘백묘(黑猫白猫)’를 외치며 경제최우선주의를 외치던 중국은 이제 환경을 생각하는 이른바 ‘녹색고양이(綠猫)’정책으로 바뀌었다. 고임금에 구인난은 새로운 차이나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해 한국의 대 중국무역흑자는 5년만에 줄었다. 중국과 일본사이에 끼인 ‘샌드위치코리아’. 그 한국 IT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중국 현지 르뽀를 통해 점검해 본다.

“삼성 보르도(LCD TV) 40∼42인치가 가장 많이 팔린다. 대당 가격은 1만1000∼1만2000위안(143만∼156만원)이다. 최고가의 최고급 브랜드지만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중산층은 품질과 디자인만 우수하면 2만위안(260만원)까지 지불할 부를 축적하고 있다. 가전의 고급화는 급진전할 것이다.” (란 애앤 춴 안쩐 궈어메이 부점장)

 삼성은 고급화 전략으로 지난해 중국 LCD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삼성은 국내 기업으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 중산층에 대한 느낌은 가히 소비의 블랙홀로 부를 만 하다는 것이었다.

 고양진 중국삼성 상무는 “삼성은 IT 분야를 중심으로 하이앤드 브랜드 이미지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며“중국의 중산층이 증가할수록 브랜드 위력은 파괴력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현대화를 이끄는 중산층은 이제 대중소비 시대를 열고 있다. 중산층이 1인당 국내총생산(GNP)가 1000달러를 갓 넘은 중국의 IT 고급화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직업과 수입, 소비 등을 대비해 현대적 의미의 중산층은 전체 인구의 7% 약 60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 인구도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국가통계국은 2005년 중국 도시 가정의 13%인 중산층은 오는 2010년에 이르러서는 2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10년후에 전세계 호화 사치품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거대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중국 베이징을 대표하는 상권 중 하나인 안쩐. 지난 25일 오후 2시. 베이징 최대 가전유통매장인 궈어메이’와 신흥 유통매장인 ‘따중’이 마주보며 고객유치전이 한창이었다.

 궈어메이 매장에 들어서자 1층 매장 가득히 휴대폰이 널려있었다. 한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매장 직원들은 적극적이었다. 삼성·LG·노키아·모토로라 등 글로벌 브랜드가 입구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서 있다. 과거와 달리노키아가 삼성, LG와 함께 고급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노키아는 전세계적으로 저가 휴대폰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모토로라도 고가전략으로 나설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 하이엔드 휴대폰 시장은 전통적으로 국내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이다.

 휴대폰 매장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가니 가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눈에 익은 삼성과 LG전자를 비롯해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브랜드는 물론 하이얼 등 중국 대표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을 유혹하느라 신경전이 치열했다. 전세계 모든 브랜드들이 중국 중산층의 지갑을 열기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삼성과 LG, 샤프, 하이얼 등 중국 가전 대표 브랜드들이 매장 한 가운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매장은 고급자재로 인테리어한 거실과 주방에 고급 가전 제품을 채워넣었다. 고급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선 착각을 일으켰다. 특히 삼성과 LG의 경쟁이 가장 치열해 보였다.

 이진세 LG전자 중국법인 차장은 “베이징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가전업체들이 부유층을 겨냥한 타깃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외국계기업은 물론 중국기업들도 부유층을 안테나를 맞추고 시장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기업들도 저가를 버리고 고가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은 눈 여겨 볼 변화였다. 란 애앤 춴 안쩐 궈어메이 부점장은 “삼성·LG·소니·하이얼 이 중국 4대 고급 가전 브랜드로 소비자들에 인식됐다”며 “PC시장의 레노버 등 중국 IT업체들도 내수 시장의 고급화 전략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휴대폰이 성능과 품질을 앞세운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하이엔드 시장을 장악했듯, 중국 가전업체들이 중국 중산층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통해 세계 고급 가전 시장을 휩쓸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중산층 공략이 쉬운 일은 아니다.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 중국에 진출했던 휴대폰업체들이 경험 부족 등으로 조용히 철수했던 적이 있다. 현지 사업가들은 중국 중산층을 상대하기 위해선 “품질관리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소니는 최근 중국의 지린성의 품질 기준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고양진 상무는 “중국내에서도 외국 브랜드에 대한 반감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삼성이 고급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품질관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가전업체의 직영 매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면서 제조와 유통의 힘의 균형이 깨졌다. 대형가전 유통점들이 제조업체들의 대리점을 밀어내고 유통망을 완전히 장악했다. 제조업체들은 이제 유통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성과 도시마다 전혀 다른 유통매장이 들어섰다. 가전업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싸움을 벌여야 한다.

 다행히 국내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 유통매장이 모셔(?)가고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유통매장 임직원과 공동 마케팅 등을 통해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여론의 변화에도 귀를 세워야 한다. 소니의 경우처럼 한 번 뭇매를 맞으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게 중국 시장의 특징이다.

◆중국의 중산층

 소비자를 알아야 시장이 보인다. 중국 중산층 소비의 주체는 누구일까. 중국 사회에서 중산층은 크게 소자족·보보족·아이에프족 등 3개 집단으로 분류된다.

 소자족은 ‘소자는 스스로 행동하고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에서 나온 용어다. 여기서 소자는 문화·교양 수준이 높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서구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월수입은 대략 3000∼2만위안 정도이며, 자유기고가·소호족·광고 카피라이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문화 소비의 핵심세력으로 분류된다.

 보보족은 잘 알려진 것처럼 ‘부르조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다. 보보족은 돈 걱정없으면 구속받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보화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다.

 중국의 보보족은 데스크톱PC를 놓아둔 채 노트북PC를 사용한다. 보보족은 소자족보다 경제력에서 앞선다. 보보족의 삶을 살려면 일반인의 6∼10배나 많은 돈이 든다.

 아이에프족(International Freeman)은 세계적으로 활동하면서 개성에 따라 직업, 거주지, 휴가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국제적인 시야를 갖고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다. 소비도 그만큼 왕성하다. 돈버는 능력이 뛰어나 소비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전문가인 이양호 박사는 “중국 중산층에 다양한 집단이 생겨난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이들의 생활 방식은 그만큼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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