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싸움에 날새는 IPTV 논의

아직도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를 두고 정부 내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나라가 한국이다. 방송위원회는 IPTV가 방송 영역이므로 방송법으로 다스리면 모든 일이 풀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IPTV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 결과인만큼 새로운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맞선다. 방송계와 통신계의 사활이 걸려 있는만큼 한치의 양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미국에서는 벌써 10년 전에 경험했고 유럽이나 일본만 해도 이미 3∼4년 전에 마무리된 일들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기싸움에만 4, 5년을 허비하고 있다. 그 사이에 블로그와 UCC라는 게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니 IPTV를 고대해온 국민이나 기업의 박탈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 직하다.

 방송위와 정통부가 싸움 그만하고 ‘2007년 내에 IPTV가 도입되도록 하자’고 결의한 게 다섯 달 전이다. 하지만 엊그제 방송위원회가 주최한 ‘IPTV 등 통신망 이용 방송서비스 도입 및 유료방송 규제개선 정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라는, 꽤나 긴 이름의 행사는 언제 그런 결의를 했느냐고 되묻기에 안성맞춤인 이벤트였다. 정통부와의 현격한 시각차만을 입증한 발표 내용 역시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런 기싸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답답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연내 도입은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에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7월 어렵사리 출범했던 융추위는 지금까지 20여 차례의 회의를 소집했지만 IPTV 도입에서 결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융추위 의견이라는 것을 몇 가지 내놨지만 협의 당사자인 방송위 쪽에서는 정통부 편만을 든다며 콧방귀도 안 뀌는 형국이다. 엊그제 토론회가 바로 그런 모양새였다.

 어찌 해서 일이 이렇게 됐을까. IPTV 도입 논의에서만큼은 융추위가 힘을 못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융추위는 지금까지 ‘IPTV 도입은 방송위·정통부의 협의 결과를 지켜보며 논의한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협의 결과를 토대로 논의에 나서겠다는 것인데, 뒤집어 보면 협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논의 구조를 처음부터 기구통합(방송위+정통부) 논의와 별개로 가져간 것도 지적된다. 뜯어 말려도 시원치 않을 싸움을 오히려 지켜만 보다가 부추긴 꼴이 된 셈이다.

 어느 한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게 바로 IPTV 도입 논의다. 어찌 보면 어느 한쪽이 백기항복해야만 풀리는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방송위와 정통부의 대치가 풀리지 않는 것도 이런 극단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계로서는 거대자본을 가진 통신사업자가 방송시장을 장악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마당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통신사업자도 방송계가 세계적인 추세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판단이 서는데 야속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융추위가 앞에 나서 어느 한쪽을 주저앉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방송위와 정통부 간에 협의점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 급선무다. 현재로서 협의점을 찾아주는 방법으로는 논의 자체를 기구통합 이후로 늦추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에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방송위와 정통부 기능의 세부적인 통합 방안도 마련될 테니 협의점 찾기는 그만큼 수월해질 것이다. 시간이 다소 지체되고 정치권을 설득하는 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싸움 구경하다 날 새우는 것보다는 백번 옳은 방안이 아니겠는가.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