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IT기업이 한국에 진출한 지 벌써 40년이 됐다. 이제는 웬만한 토종기업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연륜이 쌓인 셈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다국적 IT기업 한국지사의 위상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본지가 20대 다국적 IT기업 한국지사들의 매출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성장률은 물론 수익성을 나타내는 영업이익 및 순이익도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영업을 했다는 과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매출이 떨어지면 지사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앞장서 R&D투자센터 유치에 발벗고 나섰지만 성공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매출의 정체는 지사의 권한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지사장이 한국 내에서의 모든 인사권을 비롯한 모든 경영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영업팀장 정도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샐러리맨들의 꿈이기도 했던 다국적 기업의 지사장은 이제는 공석이 돼도 거의 6개월 이상 적임자를 찾아야할 정도다. 한국 지사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나빠지거나 훨씬 나빠지고 있다는 기업들이 45%에 이른다는 본지 설문조사가 오히려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다국적 IT기업 한국지사의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승부를 던져야할 대형 IT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본사의 투자가 이들 신흥시장에 집중 투입된다면 한국지사는 현재의 위상마저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다국적 IT기업들이 한국에서 돈만 벌어간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날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 단순히 만들어서 많이 팔면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시절에 다국적 기업들은 비록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보화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우리 기업들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해왔다. 전산화를 통해 기업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높였으며 고객정보의 가공으로 체계적인 마케팅도 가능케 됐다. 다국적 기업과 연계한 유통 및 애플리케이션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IT산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다. 다국적기업들에서 근무했던 인재들이 흩어지면서 한국의 IT산업의 저변을 넓히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따라서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한국지사들이 위상을 회복하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단순히 제품만 갖다 파는 영업에서 탈피해 본사와 연계해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만들어가는 독창적인 비즈니스모델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 일부 기업들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우수한 성능의 국산 솔루션을 본사의 제품과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거나, 국내 기업과의 M&A를 통해 한국 내에서 새로운 조직과 사업영역을 만들어가는 것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지사들이 과거 한국 기업 선진화의 모델이었던 것처럼, 다시 IT코리아를 견인하는 창조적 역할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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