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반도체업계, 반도체 원산지 규정 놓고 갈등

 세계 반도체업계가 반도체(모놀리식 칩)의 원산지 규정을 놓고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하다. 지금까지 반도체의 원산지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어 혼란이 적지 않았다. 원산지 기준을 팹에서 출하되는 베어칩 단계로 맞추기도 하고, 패키징이 끝난 단계에 맞추기도 했다다. 원산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그 반도체의 출신성분을 결정짓기 때문에, 제품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가요소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해관계 천차만별=세계반도체협회는 내년 5월 WSC총회에서 원산지 기준을 결정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현재 각국별 의견수렴에 나섰다. WSC총회에 앞서 이 문제를 토론할 조정기구인 JSTC 회의를 내년 2월 대만에서 열기로 했다. 원산지 규정은 최종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국가마다, 반도체업체들마다 이해관계에 서로 달라 합의에 이르기는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모든 팹을 국내에 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전공정 단계에서 원산지가 결정되기를 기대한다. 중국에 일부 팹이 나가 있으면서도 패키징만큼은 국내에서 처리하는 하이닉스반도체는 후공정 단계를 선호한다.

 WSC의 한 관계자는 “아직 공식 표명은 없지만, 미국과 EU는 전공정 기준, 대만 등은 후공정 기준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한국과 일본은 업체에 따라 입장이 다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업체 한 관계자는 “최대한 반도체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원산지 규정을 WTO에 제의하겠다는 것이 WSC의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WSC에서 국가별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할 전망이다.

 ◇원산지 규정, 왜 중요한가=반도체 제조단계는 전공정(팹)과 후공정(패키징)으로 나뉜다. 전공정을 거쳐 나온 상태(베어칩)를 최종 제품으로 보면 원산지는 전공정 팹이 있는 지역이 되고, 후공정 처리까지 마무리된 상태(패키지)를 최종 제품으로 본다면 해당 제품의 어셈블리(패키징)가 이뤄진 공장의 소재지가 셈이다. 멀티칩패키징(MCP)와 같은 복합칩의 경우 그 분류가 명확하지만 D램·플래시메모리·S램 등과 같은 모놀리식 칩은 그 구분이 애매해, 세계 각국은 지금까지 자국에 유리한 분류를 통일성없이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이 원산지 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은 단순한 통계상의 문제보다, 자사가 제조한 칩이 어떤 원산지 규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될 수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상황에 따라 부가가치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원산지 규정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의 근본 배경이다. 또 각 국가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FTA협상에서도 반도체의 원산지 문제는 통상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조심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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