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타 부처에 안 먹히는 IT정책

 정보기술(IT)이 모든 산업의 인프라가 되기 시작하면서 정보통신부의 IT정책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중 첫번째가 밥그릇 싸움으로 비난받아온 부처 간 관할권 다툼으로 인한 정책 실종이다. 통신과 방송을 융합한 IPTV 서비스의 지연이 대표적 사례다. 정통부와 방송위원회 간 관할권 다툼이 원인이다. 다음으로는 중복에 따른 정책의 비효율성이다. 동일한 업체가 유사한 기술개발과제로 산자부와 정통부에서 모두 지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이중규제에 의한 정책 혼란이다. 통신위원회의 중재나 심결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뒤집히거나 두 곳에 모두 범칙금을 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특정 부처 산하 기관과 관련 업계가 뭉쳐 정통부의 정책 취지에 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새로운 유형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 “금융결제원(금결원) 공인인증서 중개서비스는 위법”이라고 한 서상기 의원의 지적이 좋은 예다. 서 의원은 금결원의 공인인증서 중개서비스가 전자서명법을 위반한 것인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한다며 정통부의 안이한 자세를 나무랐다. 또 편법으로 진행돼온 전자서명법 관련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감사를 요구하고 미진할 시 감사원의 감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정통부를 질타했다.

 서 의원 지적대로 중개서비스가 위법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달 정통부의 대책회의에서도 전문가들은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현 제도에서는 정통부가 금결원과 금결원에 중개서비스를 요청했다는 은행들을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은행들과 한솥밥 식구나 마찬가지인 금결원은 민간 공인인증기관들이 시장마저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계의 공인인증서 수요를 독점해왔다. 독과점 심화로 인해 정통부는 급기야 은행에서 새로 발급하는 범용 공인인증서만큼은 금결원에서 발급하지 못하도록 전자서명법을 개정해 지난 7월부터 실시했다. 그런데도 금결원은 법 개정 이후 은행권이 타 공인인증기관의 범용 공인인증서를 자신들의 공동망을 통해 발급하기를 원한다며 중개서비스를 고집해왔다. 은행들이 새로 전용망을 깔기 위해서는 추가로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경우 금결원은 중개서비스로 가만히 앉아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어느 것이 중개서비스를 고집하는 진정한 이유인지 헷갈린다.

 원죄는 공인인증서비스 시장을 잘못 예측하고, 독과점적 지위를 지닐 것이 뻔한 비영리 기관(금결원)을 민간 기업들과 함께 공인인증기관으로 선정한 정통부에 있다. 그러나 독과점 문제 때문에 법까지 개정했지만 여전히 중개서비스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금결원과 금융업체들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성문법의 특징은 법 조항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법 적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법을 치밀하게 만들어도 허점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 성문법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약점을 이용한 금결원과 은행권의 중개서비스는 전자서명법 개정 취지를 정면으로 배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인인증서와 관련해서 금결원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것은 금결원과 금융권이 정통부가 아닌 재정경제부 관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정통부 소속 기관이라면 과연 비록 명문 조항이 없다 해도 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일을 감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거대 통신사였던 AT&T가 시장 독과점으로 인해 분할되기까지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문제는 물론이고 담합 의혹마저 있는 금결원의 중개서비스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도 없다. IT가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는데 정작 IT정책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으니 국가의 장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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