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상상 과학)는 ‘과학적인 상상력’을 통해서 꿈을 체험하는 장르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이 ‘이카루스의 신화’를 통해서 표현되듯, SF는 이러한 다채로운 꿈과 바람을 상상을 통해서 표현하고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쥬라기 공원’, ‘우주전쟁’에서 ‘스타워즈’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게임, 만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무엇보다도 SF의 근간이 되었던 소설들을 통해 SF의 세계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SF 속에서 우리들은 저 깊은 심해나 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친절한 안내인과 함께 멀리 안드로메다를 향한 기차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우주를 돌아다니다보면 외계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태권V’ 같은 로봇을 타고 지구를, 그리고 우주를 지키기 위한 결전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거대한 괴수가 도시를 파괴할 때는 역시 거대한 초인이 나타나 우주의 침략자를 몰아내고, 지구 방위군과 용사들이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고, 거미줄을 뿜어내어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 그들을 상대로 메뚜기인간으로 변신해 악의 조직과 싸우는 것은 물론,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공룡과 친구가 될 수 있고 미래 세계에선 로봇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도 있다.
이러한 ‘일상’에 지칠 때에는 악의 조직에 뛰어드는 것도 하나의 방편. 대마왕이 돼 세계를 정복하고 정의의 용사들을 혼내주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릴 것이다.
은하계 저 멀리, 그리고 머나먼 미래로…. SF 속에는 보다 멀리, 그리고 보다 미래로 나아가는 꿈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성’이 담겨 있다.단순히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싶다면, 꼭 SF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팬터지의 마법이나 무협의 어검술,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말이다(구름이나 용, 혹은 날개 달린 말을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드래곤하트’나 ‘촉산전’ 등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팬터지나 무협에서 보여주는 ‘창공의 꿈’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늘을 나는 방법’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재미있다.
하늘을 나는 것 만이 아니다. ‘해리포터’의 마법사들은 마법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간단히 여행할 수 있고, 심지어 과거로 가서 자기 자신을 구하기도 한다. 변신 정도는 기본으로 무공으로 벼락을 두 쪽 내는가 하면, 거대한 괴물을 장풍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사실, SF에서 ‘체험하는 꿈’은 거의 대부분(아니 어떤 면에서는 전부) 팬터지나 무협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재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SF’를 하나의 장르로 독립해 생각하고, 또한 구별해서 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SF`에는 여타 장르와는 다른 SF 만의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의 마법도 ‘촉산전’의 어검술도 하늘을 나는 것은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초기 SF에서 보여준 기구나 비행기보다 현실적이진 않다. 전설 속의 선녀들은 두레박을 타고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지만 SF에서는 ‘기구’, ‘대포’, ‘반중력 장치’, 그리고 ‘로켓’ 같은 보다 ‘될 법한 방법’을 선보인다.
무엇이든 가능한 팬터지와는 달리 SF에는 ‘제약’이 주어진다. 물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해리포터는 아가미풀을 먹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네모 선장은 몸보다 더 무거운 잠수복과 역시 엄청난 무게의 공기 탱크를 필요로 했다. 지느러미가 생긴 해리포터는 마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치지만 소형의 잠수정을 사용하는 제임스 본드(007)는 천천히 헤엄쳐 들어갈 뿐이다하지만, 마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많은 공부를 한 마법사들만 하늘을 날고 마법을 쓸 수 있는 팬터지와는 달리, SF의 ‘마법’은 설사 그것이 뭔지 몰라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갖고 있다.
원주민들이 말한 ‘불을 뿜는 지팡이’는 마법사도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영화 ‘황비홍’에서 내공으로 창을 막는 철포삼의 고수가 총을 배운지 얼마 안 된 병사들의 집중 사격으로 쓰러지는 장면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 물론, ‘중화 영웅’정도의 고수라면 보통 총으로 쓰러뜨릴 수 없겠지만, 역시 버튼 한번으로 나가는 마린(스타크래프트)의 가우스 라이플 한 방이면 충분히 눕힐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날기 위해 빗자루 타는 마법을 배울 필요는 없다. 단지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된다. 혹은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면 된다(물론, SF의 세계에선 ‘컴퓨터나 로봇에게 맡길 수 있고, 혹은 수면 학습이나 가상현실을 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평범한 10대 소년 아무로 레이가 적의 모빌슈츠를 격파하는 것은 바로 ‘건담’이라는 SF의 도구가 주어졌기 때문이다(결코 다른 차원으로 날려가면서 마법을 쓰게 되었거나, 기연을 통해 엄청난 내공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다).
팬터지나 무협이 ‘꿈’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SF는 ‘그 꿈을 이루는 법’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이른바 ‘장래의 꿈’이 될 수 있다고 할까?
어린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법사나 무공고수가 되려고 바라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 속 호텔에서 하루밤 묶거나 우주여행을 하길 바라는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SF의 이야기가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똑같은 시종 로봇은 적어도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고, 화성 여행도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다. 저 멀리 안드로메다는 고사하고 달조차 쉽게 가기 힘들며, 외계인과의 만남도(일부 음모론자의 생각을 제외하고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SF에는 ‘그것이 언젠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고, 그렇게 실현되도록 노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반지의 제왕’을 보고 자란 아이들 중 마법사가 된 사람은 없지만, ‘아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당대의 로봇 공학자가 되었고,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는 ‘해저2만리’에 등장한 잠수함, 노틸러스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하는 사례라 할까?(물론, ‘우주전쟁’이 라디오로 방송되었을 때 정말로 외계인이 침략한 줄 알고 미국 전역이 혼란에 빠진 사건도 있었지만)
SF가 갖고 있는 ‘가능성의 힘’에 관계없이 SF는 재미있다. 팬터지도 무협도, 그리고 추리나 밀리터리와 마찬가지로 SF에는 그만의 매력과 재미가 있다고 할까?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SF를 보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혹은 반대로 ‘너무 난해해서 뭐가 뭔지 모르는 것’이라며 SF를 기피하는 것이다. 물론, SF에도 워낙 많은 작품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난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SF’라는 이름 만 듣고 기피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이나 소설 등에는 ‘사실은 SF’인 것이 매우 많다. ‘철완 아톰’에서 ‘케로로 중사’에 이르기까지(물론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태권 브이’나 ‘우뢰매’ 등을 포함해서) 수많은 SF 애니가 존재하며,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 중에 상당수가 SF이다(근래에 개봉된 것만 해도 ‘엑스맨 3’나 ‘수퍼맨 리턴즈’ 같은 작품이 있고, 심지어 ‘미션 임파시블 3’도 넓은 안목에서는 SF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 게임이라 불리는 ‘스타크래프트’ 역시 훌륭한 과학적 상상력을 갖추고 있으며, 소설에서도 오래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은하영웅전설’에서부터 최근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이르기까지 쉽고도 즐거운 작품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SF가 유치하거나, 반대로 난해하다고 생각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어떨까?).
SF에는 수많은 작품, 그리고 수많은 소재가 존재하고 있다. 우주를 넘어서, 그리고 머나먼 미래로 뻗어나가는 꿈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어찌 생각하면 ‘재미의 보고’와도 같은 이 것을 단지 ‘SF는 왠지 싫다’는 이유 만으로 놓치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을까.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케로로 중사’에서 외계인과 공존하는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그냥 보고 즐기는 것 이상의 재미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SF는 보고 즐기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복합적인 재미를 가진 장르이니까.흔히 마법이 등장하면 팬터지, 기(氣)가 등장하면 무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 외로 많은 SF 작품에서 마법이나 기라는 개념을 선보이고 있다. SF 영화의 대표작(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불리지만)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포스’라는 것은 무협의 기와 비슷한 개념이며, 대체 역사 소설이자 SF 추리물로 잘 알려진 ‘다아시경 시리즈’에서는 ‘마법’이 과학의 하나로 정립돼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다.
SF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 렉스 루터가 말했듯 ‘너무도 발달한 과학은 마술과 같이 느껴지는 법’이다. 마치 처음 총을 본 원주민들이 ‘불을 뿜는 막대기’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물론, 고대 인들의 입장에서 볼때 지금의 복제술이나, 유전자 조작, 혹은 화학이나 물리학 등은 모두 ‘마법’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전흥식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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