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월드컵과 통신서비스 시장

 4년 만에 찾아온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열기로 한반도가 뜨겁다. 2002년 4강 신화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국민의 응원 열기가 전국에 가득하다. ‘내친 김에 스위스 잡고 16강 가자’는 기대도 더는 구호가 아니다. 좋은 일이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 한민족의 응원 열정은 이미 세계인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태극전사가 속한 월드컵 조별 예선리그는 혼미 양상이다. 아직까지 16강 진출국을 하나도 가리지 못한 채 극도의 혼전 국면에 빠졌다.

 요즘 통신서비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대혼전이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통신서비스 시장이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부경쟁은 월드컵 경기 못지않게 뜨겁고 치열하다. 월드컵은 조 구분이라도 있어 어느 정도 경기 판도를 예상할 수 있다. 또 하루 이틀 후면 승패도 가려진다. 하지만 통신서비스 시장은 안개 속이다. 그나마 고유영역 경계마저 거의 허물어져 시장 충돌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판도 예측이 어렵다.

 유선전화 시장은 인터넷전화 업체에다 이동통신서비스 업체까지 참여해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됐다. 휴대전화의 ‘집 전화 시장’ 공략이 본격화된 것이다. 인터넷 분야도 케이블방송 사업자에다 신규 사업자 등장으로 고객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무선 분야도 다를 게 없다. 번호이동에다 신규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이동통신서비스 업체마다 고객 잡기에 혈안이 됐다. 신규 서비스인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과 휴대인터넷 와이브로는 방송 서비스 분야인 DMB와 한판 경쟁이 불가피하다. TV와 같이 DMB나 와이브로로도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통신과 방송 서비스가 통합되다 보니 한 기업에서 서비스 부문 간 사활을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높다.

 서로 다른 기기나 서비스가 하나로 합쳐지는 컨버전스라는 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 보기에는 군색하다. 오히려 대부분의 통신서비스 시장이 성장정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고유영역에서 추가 성장이 어려운만큼 다른 영역으로 진출해 매출을 확대하려는 사업자의 움직임이라 보는 게 옳다. 이 때문에 유무선 통신서비스, 방송사업자의 교차진입이 가속화하면서 고유영역(역무) 분쟁도 뜨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신서비스 사업자는 역무 분쟁을 피하고 싶어도 규제에 막혀 딱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해도 자금력을 갖춘 거대기업이나 가능한 일이다. 답답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기술과 시장과 규제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통신서비스 시장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장까지 함께 성장해 왔다. 이동통신서비스만 보면 더욱 그렇다. 단말기인 휴대폰 산업은 우리나라 먹거리로까지 부상했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새로운 서비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지만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다. 수익성이 불투명해지니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로 인해 앞선 기술에 묻히는 형국이다. 투자하고 싶은 기술 분야는 각종 규제에다 제도미비로 상용화도 못하는 형편이다. 통신서비스 시장이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통신서비스 경쟁은 월드컵 경기와 같다.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머뭇거리다가는 주도권은커녕 새 판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방송통신 융합 문제는 논의할 만큼 했다.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지금처럼 기술은 앞에서 달리는데 시장은 형성되지 않고 제도는 뒤에서 헉헉대는 일이 계속되다가는 ‘IT강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전자신문, wc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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