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벤처확인제도가 엊그제 시행됐다. 벤처확인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기관으로 바뀌어 이제 기술신용보증기금·중소기업진흥공단·벤처캐피탈협회에서 벤처확인을 받을 수 있다. 기술신보나 중진공의 기술평가를 거쳐 보증 또는 신용대출을 받은 기업은 벤처기업으로 인정받아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보증·대출을 담당하는 시장금융 주체로 하여금 벤처기업 여부를 판별하게 한 것은 시장친화적으로 제도가 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무엇보다 시장금융기관 스스로 기업 미래가치 평가에 대한 질이나 책임을 더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시장에서 선별된 기업만이 벤처확인기업으로 등록될 수 있게 한만큼 벤처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간 벤처평가기관이 투자·보증·대출에 대한 책임 없이 단순 평가했던 신기술기업에 대한 벤처인증제를 없앤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더욱이 벤처확인을 받은 기업에 기업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의무공시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벤처확인기업의 경영 투명성은 물론이고 신뢰성까지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벤처확인업무가 민간기관으로 이양된만큼 벤처인증 요건이 강화되고 심사 절차가 종전보다 까다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기술력이 우수한 창업 초기 기업이 벤처기업으로 확인받을 수 있도록 창업 1년 미만 기업에 대한 확인 요건을 완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창업 초기 기업이 투자나 대출·보증을 받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신생 벤처기업에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창업 초기 기업들이 새 벤처확인제도에 불만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세금감면은 물론이고 각종 금융지원에다 코스닥 등록 시 혜택까지 주는 벤처확인제를 악용한 ‘사이비 벤처인’ ‘무늬만 벤처인’이 적지 않았다. 기술개발 등 실력보다는 각종 로비와 줄서기를 통해 벤처확인을 받으려 했던 기업도 없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벤처확인은 아무리 엄격히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도입된 벤처확인제도가 단기간에 기술혁신형 기업군을 성장시키기는 했으나 ‘묻지마 투자’를 야기해 결국 주가폭락으로 이어진 전례에 비춰볼 때 더는 벤처의 도덕적 해이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민간 벤처확인기관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에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중요한 것은 새 벤처확인제도의 운용이다. 신용보증으로 여길 만한 벤처확인업무를 민간으로 이양한다고 부작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당초 제도 개편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민간 벤처확인 주체의 기업 선별 능력을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평가나 심사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나 부정한 요소가 생기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철저한 기술 및 사업성 평가와 검증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본다.
벤처 문제는 단순히 벤처확인 자체만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 결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각종 세제상 혜택 등 특별법상의 지원 대상일 뿐인 벤처확인이 정부가 벤처기업을 인증하고, 나아가 성공까지 보증해 준 것처럼 인식돼왔다. 각종 비리는 바로 이 같은 인식을 십분 이용한 결과였다. 이것은 정부의 무리한 직접적 개입이 어떤 위험을 수반하는지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벤처 비리가 터질 때마다 운용방식이 여러 차례 개선되기도 했다. 벤처확인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벤처확인시스템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관리가 필요하다. 또 벤처기업 정책을 세울 때 시장에서 외면받기 쉬운 초기 벤처기업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톡] 퓨리오사AI와 韓 시스템 반도체
-
2
SK하이닉스, 美 인디애나 법인장에 이웅선 부사장 선임
-
3
[ET시론]K콘텐츠 성장과 저작권 존중
-
4
[사설] 보안기능 확인제품 요약서 사안별 의무화 검토해야
-
5
[ET시선] 국회, 전기본 발목잡기 사라져야
-
6
[부음] 김동철(동운아나텍 대표)씨 장모상
-
7
[김태형의 혁신의기술] 〈23〉미래를 설계하다:신기술 전망과 혁신을 통한 전략 (상)
-
8
[박영락의 디지털 소통] 〈21〉트렌드 반영한 3C관점 디지털 소통효과 측정해야 낭비 제거
-
9
[부음] 유상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씨 장모상
-
10
[IT's 헬스]“중장년 10명 중 9명 OTT 시청”…드라마 정주행 시 조심해야 할 '이 질환'은?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