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보경 코오롱정보통신 사장(54)이 또 한번 일을 벌였다. 변 사장 말을 빌리면 이번이 마지막 ‘승부수(베팅)’란다. 그 만큼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고, 전체 IT업계에서도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코오롱정보통신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코오롱인터내셔널을 전격 흡수키로 결의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IT가 주력인 기업과 무역 비즈니스가 목적인 상사. 모든 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먼저 사업 분야가 천양지차다. 한쪽은 첨단 아이템이지만 다른 한쪽은 섬유·소재 등 ‘한물간’ 아이템을 취급한다. 국내와 해외, 시장도 다르다. 합병 후 비즈니스 모델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시너지를 이야기하지만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그나마 공통점을 찾자면 ‘코오롱’이라는 울타리뿐이다. 게다가 합병 주체가 규모와 인원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선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정보통신이라니.
상식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 일등공신이 바로 변보경 사장이다.
“블루오션은 시장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업 모델에도 블루오션은 있습니다. 블루오션은 기존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번 합병은 사업 시너지에 그치지 않고 기존 산업군과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IT를 기반한 종합 유비쿼터스 서비스 기업이 새 법인의 비전입니다. ”
합병 법인은 다음달 1일 공식 출범한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정보통신도 아니고 인터내셔널도 아닌 전혀 새로운 회사다. 회사 이름도 아예 ‘코오롱아이넷’으로 바꿨다. “코오롱아이넷은 유비쿼터스 환경을 선도하는 글로벌 서비스 기업이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서비스를 통한 인프라 제공이 주력사업입니다. 인프라는 IT를 말하며 유비쿼터스 환경에 필요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혀 다른 시장과 모델을 제시해 나갈 계획입니다.”
사업 시너지도 확신하고 있다. “인터내셔널은 설립된 지 반세기가 넘는 전통 있는 기업으로 전세계 13개의 지사를 확보하고 수많은 글로벌 전문가를 두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의 IT 역량과 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융합하면 해외시장에서도 연착륙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변 사장은 아이넷은 코오롱그룹의 비전 실현을 위한 핵심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 만큼 그룹에서 위상이 격상됐으며 기대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 “코오롱 그룹은 최근 2010년까지 재계 10위권 진입을 골자로 하는 ‘빅 스텝 2010’을 수립했습니다. 아이넷은 단순히 그룹 전산 자원 관리가 목적인 단순 시스템 서비스(SI) 기업이 아닙니다. 그룹 4대 주력의 하나인 서비스 쪽을 책임지게 됩니다. 특히 그룹 변화를 주도하며 코오롱의 새로운 ‘스피릿(spirit)’ 모델을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통합 전문 경영인’으로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지만 변 사장은 오히려 이를 즐기는 분위기다. 실제 그는 직장 생활을 뒤돌아보면 늘 변화의 연속이었다.
변 사장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우실업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당시 최고의 기업이었던 무역상사를 뛰쳐 나와 글로벌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79년에 IBM에 입사해 아·태 지역 본부장과 한국IBM PC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LG전자와 IBM PC부문을 결합해 ‘LG IBM’ 창립을 주도했고 대표를 맡으면서 매년 30%씩 수익을 올리며 이를 알짜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어 2002년 코오롱 그룹 첫 외부 영입 최고경영자(CEO)라는 기록을 세우며 코오롱정보통신의 경영을 맡아 구조조정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올 초에는 유비쿼터스(U)사업을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지난 2월 제어 네트워크 분야 국제 표준 기술 ‘론웍스’를 보유한 미국 애슬론과 전략적으로 손잡았다.
고비고비 굵직한 선택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실패는 없었다.
“한마디로 행운이었죠. 지금 뒤돌아보면 오히려 변화가 행운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누구나 부담스러워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결코 발전이 없습니다. 회사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는 결국 도전이고 열정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또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전문 경영인으로 벌써 6년째다. 2000년 LG IBM 대표를 시작으로 2002년 코오롱정보통신, 올해 코오롱 아이넷까지. 경험에서 나온 분명한 철학도 가지고 있다. 인재와 관련해서는 그는 철저한 ‘리더 책임론’이다. 모든 것은 리더에게 책임이 있다는 신념이다. 대신에 리더에게 필요한 모든 권한은 보장해 준다. “부서 분위기가 나쁘면 팀장을 갈아야 합니다. 본부가 문제가 있다면 본부장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회사 전체가 잘못돼 가고 있으면 당연히 사장에 책임이 있습니다. 직원은 단지 리더를 믿고 따른 죄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 리더라면 철저한 ‘실행(execution)주의자’ 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를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 성과를 내느냐, 못 내느냐는 결국 도전과 실행에서 판가름난다는 설명이다.
변 사장은 2010년 ‘매출 1조원대’의 코오롱아이넷을 위해 또 한번의 도전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