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장비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끼리 치고받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과당경쟁은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선 모든 업체들이 가장 경계하고 되풀이해서는 안 될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출혈 수출경쟁이 근절되지 않고, 그것도 우리가 전략 수출상품으로 삼아 적극 육성하고 있는 DMB 장비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국내 업체가 아무리 시장 선점을 겨냥했다지만 국내에서 1억원을 호가하던 지상파 DMB서비스용 인코더 장비를 중국에서 3분의 1도 안 되는 3000만원대에 공급했다는 것은 출혈 수출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처럼 덤핑이라 할 정도의 낮은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해당 수출업체가 얼마나 많은 수출물량을 확보할지는 모르지만, 벌써 중국업체가 인코더 장비 구매 상담에서 이 가격을 기준으로 계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우리 지상파DMB 장비 수출에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중국이 우리 인코더 장비를 많이 사용하면 단말기 등 후방산업 수출이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영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걱정이다.
환율하락 등 수출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요즘 해외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끼리 과당경쟁은 수출에 악영향을 주는 등 모두에게 손해만을 끼친다는 점에서 근절돼야 할 일이다. 더욱이 현재 국내 업체만 상품화할 정도로 제품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마저 품질경쟁보다 가격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제 살 깎아 먹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이처럼 해외 시장에서 국내 장비업체 간의 과당경쟁은 당장 해당기업의 수출 실적 올리기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의 DMB 장비업체는 물론이고 넓게는 IT관련 업체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해외 시장 개척에는 가격을 무기로 한 공격적 경쟁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경쟁 환경이 국내 업체끼리로 한정되면 가격경쟁은 국산품의 수출 가격경쟁력 약화만을 불러올 뿐이다. 출혈경쟁 없이 품질경쟁을 벌여 특정기업이 적정한 가격에 수출 계약을 하고 공급한다면 정당한 수익을 올리고 다른 업체도 새로운 공급처를 개척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끼리 해외 시장에서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지나친 경쟁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수출하게 됐다면 앞으로 해당국가로의 수출계약에서 그 단가 이상 받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
단순히 현지 DMB 장비 납품 실적을 만들기 위한 저가 수출은 일차적으로 해당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물론이고 자칫 외화내빈의 헛장사만 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국내 업체들의 과당경쟁이 계속되면 국산품의 수출 가격을 떨어뜨리고 한국의 신인도 제고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신성장동력 수출확대로 무역수지 흑자 폭을 넓혀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수출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이전투구식 경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만 들리면 벌떼처럼 몰려들면서 가격인하 공세를 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지상파DMB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지상파DMB에 관한 한 우리가 종주국이다. 그만큼 관련 제품은 앞으로 우리나라 일등 수출상품으로 부상할 여지가 큰 기대주다. 그런데도 수출 초기부터 해외 시장에서 우리 업체끼리 덤핑 공세나 과당경쟁으로 얼룩져서는 안 될 일이다. 과당경쟁은 상생의 길이 아니라 공멸의 출발선이라는 점을 업계는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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