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진행된 ‘시·군·구 정보화 공통기반시스템 구축사업 상용소프트웨어 도입 프로젝트’는 국내 소프트웨어(SW)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에서는 처음으로 하드웨어(HW)와 SW 분리발주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HW와 SW를 분리해서 발주하겠다는 간단한 절차지만 이것이 업계에 던져준 의미는 적지 않았다.
◇분리발주가 대안=발주자→주계약자→하도급으로 이어지는 SW분야의 먹이사슬 고리를 끊을 유일한 대안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분리발주다. SW산업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핵심을 찾아 들어가면 결국은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HW와 SW를 분리발주하기보다 대형 IT서비스업체와 일괄 구매계약을 하는 데 따른 문제로 귀결된다. IT서비스업체가 주계약자가 됨으로써 자체개발 SW 우선공급, SW 전문업체에 무리한 가격 인하요구 등 고질적 병폐가 나타난다. ‘아무리 좋은 솔루션을 개발하고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SI업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공공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공기관 국산SW 구매 의무화 등 그동안 발표됐던 정부의 산업 또는 기업 육성책으로 보면 공공SW시장은 영세한 국내 SW업체의 최대 수요처고 최고의 준거 사이트임이 틀림없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발주·계약 제도도 잘 정비돼 있다. 하지만 전문성이 미흡하고 뿌리박힌 불합리한 구매관행으로 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구매사업을 제외하고 공공사업 대부분은 IT서비스업체를 거쳐 이뤄진다”며 “분리발주가 SW 제값받기의 단초인 동시에 중소SW 전문업체의 활로를 열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최근 국내 SW IT서비스 및 SW협·단체 최고경영자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SW산업에서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실현돼야 할 과제로 ‘SW 분리발주’가 꼽혔다.
◇발주전문성 확보가 관건=공공기관이 SW와 HW를 분리 구매하지 않고 IT서비스업체에 일괄 발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발주기관이 IT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자칫 프로젝트가 잘못됐을 때 따지게 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 IT서비스업체가 앞에 나서 사업을 도맡는 것은 발주 공무원이 해당 프로젝트에 기술적으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강재화 공공발주자협의회 회장은 “적은 인원의 담당 공무원이 직접 구매할 SW를 분석, 비교하고 이를 구동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를 제안하는 IT서비스업체의 로비까지 더해지면서 대형 IT서비스업체 중심의 공공프로젝트 진행은 마치 원칙처럼 굳어진다.
◇제도장치 속속 마련=분리발주를 도입·확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지난 2월 기획예산처가 정부 각급기관에 GS인증제품의 분리발주를 권고하고 나섰다. 기획예산처는 ‘2006년도 세출예산집행지침’에 ‘정보화사업 발주 시 GS인증 등 품질인증을 받은 패키지 SW는 적정성을 사전 검토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분리발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기획예산처는 SW 분리발주 정착을 위해 정보통신부와 함께 5개년 중장기 계획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보통신부가 내놓은 ‘SW 공공구매 혁신방안’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도 분리발주다. IT서비스 사업 수행 시 GS인증제품의 분리발주 가능성을 사전 검토, 가능한 한 우수 SW 분리발주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부득이 일괄발주를 할 때에는 중소기업의 컨소시엄 참여 여부와 GS인증제품 채택 여부를 제안서 평가 때 반영키로 했다.
◆기고-이수용 중소SW사업자협의회장
최근 소프트웨어(SW) 업계와 관련된 상반된 두 가지 소식이 들린다. 좋은 소식은 정보통신부가 SW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소프트웨어팀을 소프트웨어진흥단으로 확대 개편한 것이고, 안타까운 소식은 코스닥의 80%가 넘는 SW기업들이 타 업종 전환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SW사업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SW산업 발전을 위해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실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왜 이렇게 돼가고 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SW업체의 수익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수익창출이 힘든 이유를 열거해 보자. 다단계 유통구조, 과당경쟁, 품질을 무시한 최저가 입찰, 낮은 유지보수 요율, 유사제품 난립, SW 전문 벤처캐피털 부재 등 전반적인 시장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그 가운데 하나가 공공사업 SW 분리발주제라고 할 수 있다.
SW를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에서 분리해서 별도로 계약하면 다단계 유통구조를 제거해 마진을 확보할 수 있고 향후 유지보수도 직접 솔루션 제공자가 하게 된다는 취지다. 분리발주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앞에서 지적했던 솔루션 업체 간 과당 저가경쟁은 SW분리발주가 이뤄지더라도 그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중소 SW 사업자들 간의 M&A나 합종연횡이 필요하다.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저가경쟁은 다시 수익성 저하로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기술과 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또 발주처로서는 다양한 SW에 대한 지식과 평가에 대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매담당자들의 업무역량 강화를 위한 충분한 지원과 제도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분리발주를 통해 발주기관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를 대외적으로 알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발주처는 정보화전략계획(ISP) 단계를 거쳐 SI나 컨설팅업체에 솔루션 선택을 많이 의뢰할 수밖에 없다. 영세한 중소SW 솔루션 기업의 파산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W 분리발주는 이러한 문제점도 감안해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중앙행정기관 발주유형 및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