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자의 축제 데브 데이를 개최했다. MS가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과 상생하겠다는 취지에서 개발자를 위해 준비한 첫 행사였다고 한다.
데브 데이를 바라보며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SW를 개발한 나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SW기업을 볼 때마다 궁금해 하곤 했다. 개발자의 자질은 우리나라가 훨씬 뛰어난데 왜 우리에겐 세계적인 SW기업이 없을까. 우리나라로 돌아와 일하며 또 하나의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인재를 키우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왜 35세만 넘으면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일까. 기업은 고급개발자가 없다고 야단이고 개발자는 직업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이 ‘악순환’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개발자로 30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SW 개발은 특유의 개발자적 자질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다. 지금도 유능한 젊은이들이 창조의 희열 때문에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국내 SW 시장과 시스템은 그들을 좌절시키고 분노케 하며 30년은커녕 5년도 안 돼 그 길을 포기하게 만든다.
막연히 좋아서 시작했다가 단순 반복 작업에 지치고 불합리한 가격 체계로 인한 나쁜 처우에 실망하면서, SW강국을 이끌어가야 할 두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다. 국가적 손실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미국 경쟁력의 가장 큰 축은 시스템 SW다. MS의 그 거대한 힘을 보라. MS의 경쟁자는 타 SW 기업이 아니라 PC 비사용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W는 자본·설비·토지가 필요없고 법적 규제가 덜하며 원재료나 운반비도 안 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훌륭한 두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와 인재를 가진 우리나라가 어느 나라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SW기업이 아직까지 없다. 미국과 서유럽은 물론이고 러시아·이스라엘·대만에도 있는데 말이다.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0년간 SW 개발자로 사는 것은 인생의 열망이다. 나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사람이 SW를 만들고 있으며, 평생의 업(業)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와 산업구조가 받쳐주지 못하는 이상, 스타 개발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 SW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해결책이다. 물론 이후에는 정부의 SW산업 지원책이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SW기업 역시 인수합병을 통해 체계적으로 거듭나야 한다.
SW는 핵심인력 한두 명이 빠지면 덜컹대는 산업이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한 사람이 거대한 파워를 낼 수 있는 지식집약산업이라는 의미다. 한 명이 세계를 뒤바꿀 수 있는 산업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같은 글로벌 부가가치의 핵심에 개발자가 있다. SW는 개발자가 창조하는 분신과도 같다.
내 분신이 퍼져나가 전 세계 기업과 인재에 의해 인정받는 그 짜릿함은 개발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 희열을 30년 동안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시스템이 지원해 줘야 한다. 개발자들의 열정과 창의성, 프라이드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현재가 어떻다 해도 SW는 틀림없이 우리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만든 SW로 세계로 나가야 한다. 개발자 역시 더 노력해야 한다. 산업의 미성숙함을 개인의 부실을 덮는 핑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발전 없이 결코 SW의 시대는 오지 않으며, 그런 날이 온다 해도 발전 없는 사람은 이미 도태됐을 것이다.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책, 기업의 인재양성, 개발자의 노력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채워져 SW를 만드는 사람들이 30년, 아니 그 이상 즐겁고 희망차게 일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가까운 미래에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날을 준비하며 지금 최선을 다하려 한다.
◆최일훈 소만사 연구소장 acechoi@soman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