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상희 전 과기처 장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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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국의원입법을 막아라(하)

 필자와 일행은 더몬드 의원과 만남을 끈질기게 추진했고 결국 바쁜 회기 중이었지만 그를 우리가 원하는 때에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더몬드 의원이 자신의 후원회장을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필자는 우선 그가 연배가 더 많은 까닭으로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질문했다.

 그는 흔쾌히 “당신을 ‘아우’로 생각하겠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논리적 설득은 어려울 것 같았다. 감성적인 설득을 위해 아우로서 인간적인 호소를 했다

 “형님! 형님이 입법 준비하는 수입규제법이 통과되면 이 아우는 다음 선거에서 낙방합니다. 제 지역구의 관련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으니까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를 치른 의원에게 가장 심각한 고민은 다음 선거에서 당락 여부가 아니겠는가?

 잠시 침묵하던 더몬드 의원은 필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법안 자체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제 지나친 욕심일겁니다. 형님! 법안을 한국 총선 이후 회기로 넘길 수 없겠습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던 더몬드 의원은 “이 법안이 보류되면 아우의 다음 선거 당선이 확실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 순간에 확고한 자세를 보여야겠구나!’

 그래서 “아우가 형님께 100%당선을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다”고 말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드디어 더몬드 의원이 법안 자체를 이번 회기에는 보류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중요 법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반 법안들은 회기를 넘기게 되면 슬그머니 폐기되는 게 미국 입법부의 관례다. 더몬드 의원이 아우를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려 수입규제법안은 회기를 넘기면서 결국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큰 고민은 관련 산업의 미래였다. 이번 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뻔했던 신발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양에 의존하는 신발산업은 개발도상국에 쫓기고, 선진국에 막히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부를 설득해서 부산에 신발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부산에 있는 대학의 석박사 논문을 신발관련 연구와 연결하면 신발을 첨단의료용구로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부학적·생리학적 진단자료를 근거로 신발처방을 마련하면 위장병, 척추 등 맞춤전문 신발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의 경쟁이 아니라 질적 경쟁으로 나가면 무역장벽도 극복하고 부가가치도 클 것 아니겠는가?

 또한 우리 독자상표는 ‘88 서울올림픽’을 끝낸 후 ‘88 서울’로 정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고뇌와 발상의 결단을 거쳐 드디어 부산에 신발연구소가 준공되었다.

 그러나 신발산업의 희망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 해 13대 선거에서 필자는 낙선했다. 형님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이제 고인이 된 더몬드 의원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rheeshph@chol.com

 ※사진설명: 필자는 미국 의회의 한국 수입규제법 통과를 막기 위해 워싱턴DC까지 갔었다. 사진은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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