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도체산업이 위기라고?

 ‘잘 나가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그동안 우리 반도체 업체는 파죽지세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금 우리 반도체 산업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으며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1위다. 13년이나 정상을 지키고 있고 올해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무조건(?) 1위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1위를 지켰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이미 4년 전 이른바 ‘메모리 신성장론’으로 37년 만에 ‘무어의 법칙’을 깨며 기술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삼성은 인텔의 인텔개발자포럼(IDF)에 맞서 당당히 삼성모바일솔루션(SMS)포럼을 열어 향후 세계 반도체 산업 전망을 내놓으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모든 게 너무 잘 돌아가니까 오히려 불안하지 않은가. 이쯤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 주변 흐름을 냉정히 점검해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무엇보다 최근 세계 반도체 개발·성장의 주역인 미국·일본이 가해 오는 공세가 심상치 않다. 치열한 경쟁은 가격하락을 낳는 법. 우리 반도체가 과연 언제까지 큰 수익을 내주는 품목으로 자리할지 불안스럽다. 지난해 말부터 나타난 달러화 약세는 그 불안과 우려를 가중시키는 악재가 되고 있다.

먼저 미·일 반도체 공세를 살펴보자.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반도체의 히노마루 반도체 구상이 균열됐지만, 도시바가 돌연 6000억엔의 플래시메모리 투자 발표로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숨겨놓은 속을 드러냈다.

미국 반도체 업계의 공세도 결코 우습지 않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세계 시장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플래시메모리 시장 공략에 세계 1위인 인텔과 마이크론이 뭉쳤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오는 20일 원자바오 총리 방미에 앞서 중국내 지재권만 보장된다면 반도체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달러 약세 속에서 예의 미국·일본 반도체 업체의 공세가 이어지면 공급과잉과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의 아이팟 판매부진 분위기는 실제로 플래시 가격 약세와 성장정체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85년 1메가 D램 개발경쟁 끝에 수요부조로 88년까지 3년간 죽음의 반도체 가뭄을 맛봐야만 했던 시절이 다시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달러 약세는 당장 반도체 업계에 10%대의 환차손을 고스란히 떠안게 할지도 모른다. 가격 경쟁은 곧바로 발등의 불인 달러화 약세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우리 반도체 업계의 숨통을 조여오게 될 것이다.

게다가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결코 반도체 업계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첨예한 이견을 보이는 대상 품목에 휴대폰과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86년에 일본을 상대로 2차에 걸친 이른바 ‘미·일 반도체전쟁’을 벌이면서 11년간 일본을 괴롭힌 전력이 있다.

86년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 일본이 이 전쟁을 수습하고 난 뒤 한국에 추월할 기회를 내준 것은 우리에게는 다행이었다. 반면에 당시 전략적 변곡점에 서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일본 정부와 산업계에는 11년을 허용토록 한 고난의 시기였다.

역사의 가르침대로 반도체 업계는 호황인 지금 ‘샴페인’보다 ‘긴장의 고삐’를 잡고 가뭄에 대비해야 한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