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저명 유리미술가이자 고미술사가인 요시미즈 츠네오는 ‘로마문화 왕국, 신라’라는 책에서 4세기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외교를 단절하고 중국문화 수용마저 거부한 ‘문화의 섬’이었다고 주장한다. 중국문화를 대체한 것은 바로 중앙아시아의 ‘스텝 루트’를 통해 들여온 로마제국의 문화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갈리아라고 불렸던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현재의 터키·이스라엘·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752년 신라의 일본 수출 품목에 아프리카산 침향(沈香)이 포함돼 있다. 고대 아랍지역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에 신라를 표기해 놓은 기록이 있으니 신라 시대에 서양과의 교류를 확신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국제무역항인 벽란도를 통해 송과 왜뿐 아니라 멀리 아라비아까지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중동·아프리카와 우리나라의 교류는 이렇게 1000년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기록 이전의 사건들을 포함하면 그 역사는 더욱 더 길어질 것이다.
이달 초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지역 순방은 1000년 문명 교류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였다. 첫 방문국인 이집트가 휴대인터넷(와이브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하고, 양국 간 IT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것은 이번 순방의 커다란 성과다. 나이지리아와 IT 협력 MOU를 교환하고, 알제리와 정보통신기술(ICT) 협력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정부 간 IT 협력을 강화하고 국내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90년대부터 꾸준하게 추진돼온 IT산업 육성과 정보 인프라 구축의 결실로 IT 분야에서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수 시장이 협소해 IT산업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해외진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특히 와이브로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신기술을 경쟁국보다 2∼3년 먼저 개발한 우리로서는 관련 업계의 해외 시장 선점이 시급한 과제였다.
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배경 아래 DMB 등 IT기술 및 제품의 세일즈 외교를 적극 추진하게 됐다. 이번 아프리카 순방에서 IT 비즈니스 포럼, 와이브로·DMB 시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IT코리아의 위상을 제고하고, 국내 기업의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명사적으로 서구 문명의 발상지라는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이집트를 비롯해 북부 아프리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블랙아테나’ ‘케임브리지 고대 이집트사’ 등 고대 문명 해설서들을 보면 고대 그리스에 이집트와 힉소스가 식민지를 건설, 수백년간 통치하면서 문자를 처음으로 전해주는 등 고대 그리스 문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21세기 정보통신으로 개화한 인류기술의 역사가 아프리카에서 발원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 기술의 발원지인 아프리카와 21세기 정보통신 선진국인 한국의 정보통신 관계자들이 만난 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실크로드와 중국을 지나, 서쪽으로는 유럽·대서양·태평양을 건너온 인류문명은 한국에서 정보통신으로 꽃을 피웠다. 문명의 시원과 첨단문명의 만남이다.
지난해 5월 열린 서울 디지털포럼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한국은 인류에게 ‘인쇄(활자)’와 ‘디지털’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줬다”며 우리나라 IT를 극찬했다.
이러한 ‘IT 코리아 파워’는 “냉전 이후 시대에는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문명이 분쟁의 도화선 역할을 할 것이고, 문명의 충돌은 막을 수 없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전망을 부정하면서 문명 간 ‘대화’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렇게 세계 문명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선배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원장 sbkim@ic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