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지난 주말 열린우리당 입당식을 치른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옆에는 ‘우리’와 ‘진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로봇은 진 전 장관의 입당원서를 정동영 대표에 건네는 역할을 맡아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언론에는 ‘IT CEO 출신 후보로서 차별화를 위해 자신이 직접 설계한 로봇을 등장시켰다’고 소개됐다.
그러나 이 로봇은 진 전 장관의 재직시절 벤처기업인 로보티즈와 KIST가 정부과제로 개발한 것이다. 로봇산업을 미래산업의 테마로 키워낸 것은 그의 치적 가운데 하나지만, 나랏돈으로 벤처기업이 개발한 로봇을 개인의 선거운동에 앞세우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이 로봇은 일본 소니의 유명한 로봇 ‘큐리오’에 대적하는 성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달리는 휴머노이드였고 속도도 큐리오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은 화려하지 못했다. 개발 벤처가 대대적으로 홍보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진 전 장관이 2월 초 여러 행사에 동반했지만 ‘정체’는 불확실했다. 2월 7일 본지가 이 로봇의 ‘정체’를 보도한 뒤에도 몇몇 언론이 보도했을 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정통부와 개발업체가 보도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로봇 개발이 완료됐다고 밝힐 만한 수준에 아직 다다르지 못해서”라는 게 정통부의 설명이다. 심지어 한 방송사에서 촬영까지 해갔으나 끝내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랬던 로봇이 갑자기 진 전 장관의 입당식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상한 모양새다. 개발 벤처기업의 사장은 “이벤트 회사 요청을 받고 참석하게 됐다. 진 전 장관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벤처기업의 성과물이 선거 홍보용으로 둔갑한 것은 마뜩지 않은 일이다.
이 로봇은 아직 이름이 없다. 개발명인 RX가 전부다. 하지만 얼결에 ‘우리’와 ‘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열린우리당’과 ‘진대제’에서 따온 이름이다. 개발 벤처기업은 새 이름을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출생 2달여 만에 이름이 두번이나 바뀌는 ‘정치로봇’의 첫 행보가 슬프다.
◆디지털산업부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