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
며칠 전 우연히 국내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부사장을 사무실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곳곳에 다양한 액세서리가 있었지만 사장실 한쪽에 있는 거북선 모형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거북선 모양 정 중앙에 꽂힌 깃발에 적힌 사자성어였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누구나 아는 사자성어였지만 기업 사장실에서 보는 느낌은 남달랐다.
당연히 그만큼 사업 환경이 힘들어 비장한 각오로 열심히 해보자는 의미가 아니냐고 부사장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한 문구보다는 거북선 자체에 뜻이 있어 각 사업부장에게 새해 선물로 거북선을 나눠 주었다는 것이다.
거북선은 당시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는 해석이다. 철갑선이라는 개념에서 배에 뚜껑을 씌우거나, 뚜껑에 철심을 꽂고 화포를 사방 곳곳에 배치하는 아이디어 등등이 선박 전문가도 쉽게 하기 힘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부사장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시장’이었다. 거북선을 보면서 새로운 시장을 고민하라는 당부였다. 이제는 보통 명사처럼 불리는 ‘블루오션 시장’을 실제로 만들어야 전자업계가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었다.
IT업계를 포함한 전자업계 최고경영자의 최대 고민은 ‘실적’이다. 성과를 내야 존재 가치를 인정 받고 결과적으로 기업도 생존할 수 있다. 상품과 기술을 설명하는 백 마디 말보다 상품 하나를 내다 파는 게 더 값어치를 인정받는 상황이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수요가 있어야 하고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주변 분위기는 녹록하지 않다. 특히 하드웨어 비즈니스는 오히려 파는 게 손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해결책은 한 가지다. 새 상품으로 새 시장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기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기를 각오하면 죽는다”는 신념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확하게 트렌드를 짚어보고 소비자의 수요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1% 부족하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가 냉정하게 소비자 편에 서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컴퓨터산업부=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