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와이브로 혹은 HSDPA의 길

와이브로와 HSDPA가 조만간 비슷한 시기에 선을 뵈게 됐다. 시기가 맞아 떨어지다보니 두 서비스가 경쟁 관계처럼 돼버린 것은 차라리 아이러니다.

 사실 두 서비스가 경쟁관계로, 그것도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선을 뵐 성질의 것은 아니다. HSDPA가 2003년 예정됐던 IMT2000 서비스가 3년쯤 늦어져 탄생한 것이라면 와이브로는 정부가 반도체와 CDMA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를 찾던 중 발굴된 것이다. 와이브로가 다분히 정책적이고 전략적인 측면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와이브로와 HSDPA 상관관계가 주목받게 된 것은 다소 의외의 일이다.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간 경쟁 의식이 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KT는 와이브로에 사운을 걸었고 SK텔레콤은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HSDPA를 택한 것으로 돼 있다. 게다가 KT는 올해에만 와이브로에 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고, SK텔레콤 역시 HSDPA의 전국망 커버리지를 위해 6000억원의 돈을 쏟아 붓는 중이다.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기도 한다.

 KT는 자회사인 KTF를 통해 이미 HSDPA 사업에 발을 담궈놓았고 SK텔레콤 역시 HSDPA를 전면에 내걸어 놓고도 와이브로 사업권을 따냈다. 두 사업자가 교묘하게 상대방의 사업을 견제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모양새는 두 사업자가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와이브로와 HSDPA 관계를 더욱 색다르게 보여주는 또 다른 변수가 정통부의 움직임이다. 알다시피 와이브로와 HSDPA는 모두 정통부가 추진하는 IT839전략의 8대 인프라 품목들이다. 다만 와이브로는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찾아낸 새 먹거리였고, HSDPA는 그 이전부터 발굴된 몫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정통부는 요즘 HSDPA를 제쳐두고 와이브로 활성화에 발벗고 나선다는 인상을 준다.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진대제 장관의 발언만해도 그렇다.

 진장관은 엊그제 “반도체와 CDMA 이후 10년동안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먹거리는 와이브로”라고 아예 단정해버렸을 정도다. 두 서비스에 대한 비교 요구가 있을때마다 ‘서로 경쟁재이면서 보완재’로 정의하려는 것도 이런 뜻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와이브로는 아직도 KT 내부에서 조차 투자 확대와 축소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판국이다.

 정통부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가 지나치게 와이브로에 대한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다는 오해를 받기 알맞다.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지명도가 낮은 와이브로에 대한 신뢰성을 배가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만큼이나 커질 부정적인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개 상품을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먹거리 축인 HSDPA 분야를 위축시킬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서는 와이브로가 아직 시장에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서비스 모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수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와이브로와 HSDPA를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무엇이 더 유연하고 빠르며 저렴한 지에 대한 비교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와이브로 기능을 원하면 와이브로, HSDPA가 필요하면 HSDPA를 택하면 된다. 이도 저도 아니고 지금쓰고 있는 통신서비스가 만족한다면 또한 그런대로 그만일 터이다. 어떤게 더 국가적인 먹거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하는건 더더욱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용자들의 고민에 답해줄 것은 KT나 SK텔레콤의 일이다. 정부는 KT와 SK텔레콤이 사용자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갈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길을 터주는 일을 하면 된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