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국가산업단지는 디스플레이와 모바일을 특화한 국내 최대 첨단 IT제품 생산기지로 유명하다. 남구미IC를 빠져나와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낙동강을 끼고 크고 작은 공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촘촘히 들어서 있는 구미 제 1, 2, 3단지와 4단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1월 초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공단로를 따라 쉴새없이 오가는 화물차들과 세계 100대 기업인 삼성과 LG의 ‘거창한’ 로고가 새겨진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다.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 직원의 안내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금오테크노밸리. 1단지 내에 유럽풍의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이곳에는 대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20여 협력업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서 휴대폰 카메라용 부품을 생산해 연 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에스엔티전자는 최근 MP3용 초소형 스피커를 독자 개발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업체다. 대다수가 대기업 협력업체인 이곳 금오테크노밸리에는 에스티엔처럼 자사 브랜드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중소업체가 적지 않다는 게 추진단 직원의 말이다.
구미산업단지는 지난 2003년 말 수출 200억달러를 돌파한 뒤 지난달 300억달러에 이어 올 상반기 안으로 350억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1995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무려 400% 이상의 신장세를 보인 셈이다. 특히 이번 300억달러 수출실적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공장이전 허용이라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지역 기업들이 이뤄낸 쾌거로 받아들여진다.
총 530만평에 이르는 1, 2, 3단지를 빠져나와 낙동강 산호교를 건너다 보면 왼편에 IT인력 양성의 요람인 금오공대 신 캠퍼스가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다. 거기서 다시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를 뒤로하며 약 4km쯤 달리면 한창 공사중인 도로를 끼고 황량한 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외국인전용단지와 함께 200만평에 이르는 구미국가 4단지다.
올해 말께 완공예정인 4단지에는 코리아스타텍·한국옵티칼하이테크·마이크로하이테크·ZF사 등 외국인투자기업이 이미 터를 잡고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착공한 도레이새한의 3공장도 오는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6만평 부지에 건설중인 3공장에서는 광확산필름과 편광판용 이형필름 등 디스플레이용 소재 및 2차 전지용 핵심소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외국인전용단지 맞은편에는 구미디지털전자정보기술단지 조성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총 74억원이 투입된 기술단지는 내년 말께 완공돼 구미지역 전자정보산업의 연구개발 및 기술혁신을 주도하게 된다.
수도권 공장 허용이라는 악재에도 아랑곳없이 구미산업단지는 지금 세계적인 전자산업의 클러스터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고 있다.
지난해 4월 발족한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단장 박광석)은 내륙 최대 첨단 IT생산단지가 연구개발 기능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디스플레이 및 모바일과 임베디드 분야의 세계적인 클러스터로 발돋움하는 핵심역할을 맡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생산공장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협력을 통한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 혁신클러스터로 도약하게 한다는 것이 바로 구미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의 사업목표다.
이를 위해 추진단은 현재 산업기술역량 네트워킹 기업지원 생산기반정비 글로벌화 혁신거버넌스 등 6대 분야에 35개 프로젝트와 14개 핵심과제를 선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네트워킹 사업으로 지난해 지역 20개 기관과 협력체제를 구축했으며 △디스플레이 △모바일 △임베디드 △넷플러그 △홈네트워크 △에너지 △소재·부품 조립 △금형산업디자인 △메카트로닉스 △전자정보부품 등 10개 미니클러스터를 구성했다.
게다가 기업의 각종 지원방안을 발굴하기 위해 94명의 전문가 풀과 수석코디네이터를 위촉해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혁신마인드 제고사업으로 관련 분야 세미나와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추진단은 특히 2차연도 사업에서는 산업기술역량 강화 및 산·학·연·관 네트워킹 강화를 위해 게스트하우스와 디지털문화관·홍보관 등을 운영하고, 기술사업화 종합지원단을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연구개발 기반구축을 위해 구미전자기술연구소의 디스플레이 및 모바일 분야 집중 육성, 지역 대학 내 산업디자인전문대학원 설치,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과의 임베디드 시스템 센터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센터 유치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해외기술 상업화 전문기관 및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구축해 국제공동기술 개발과 해외기술 이전매매, 해외마케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해외연구소 유치도 집중해야 할 사업 분야 가운데 하나다.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은 이 같은 사업을 통해 오는 2008년에는 구미단지의 연간 생산규모가 80조원에 이르고 수출 500억달러, 고용인원 10만명에 이르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인터뷰-박광석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장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우리나라 전기전자산업의 본산지입니다. 오는 2월 말께면 수출 350억달러를 달성할 전망이고, 1차연도 사업에서 결성한 미니클러스터를 기반으로 올해는 단지 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박광석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장(55)은 “오는 4월 시작되는 2차연도부터는 기업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원사업에 무게를 두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그동안 취약했던 구미단지의 R&D 기반 구축, 산학연 연계사업, 교육 등 정주여건 마련, 신규시장 개척을 위한 마케팅 지원 등 4개 분야를 집중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 단장은 이와 관련, “지난해 말 경북통상, KOTRA 등과 기업의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한 협약을 했다”며 “공단본부 차원에서 추진중인 해외클러스터 기술교류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단지 내 중소기업 간 기술제휴 및 공동연구개발 등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니클러스터 내에 워킹그룹을 결성해 전문가들이 클러스터 회원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각종 애로를 해결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 교수 한 명이 한 개 기업을 담당하는 멘토링제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이 같은 사업들이 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회원 간 신뢰구축이 중요합니다.”
박 단장은 “올해는 특히 결성된 업종별 미니클러스터 회원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도 주력할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지난해 조직된 클러스터 지원기관협의회 및 실무위원회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공장완화와 단지 내 중소기업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련 지자체와 각종 지원기관은 힘을 모아 정부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수도권 공장완화와 같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구미단지는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갈 것”이라며 “앞으로 구미단지에 적합한 혁신사업을 발굴해 생각하는 클러스터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미니클러스터 현황
대기업 의존도가 높았던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 교수 등이 참여하는 미니클러스터를 통해 중소기업 중심 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등한 협력관계가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체질이 바뀌고 있다.
구미단지 혁신클러스터 추진단의 첫 사업인 미니클러스터 구축사업은 중소기업들에 산·학 협력을 통해 R&D를 접목시킴으로써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덩달아 협력관계인 대기업의 제품완성도도 높인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현재 구미단지에는 디스플레이와 모바일, 임베디드 시스템 등 10개 분야의 미니클러스터가 구성돼 기업의 공동 애로기술 발굴 및 해소, R&D기능 확충, 공동포럼 개최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니클러스터에는 현재 총 437명(기업체 336명, 대학 71명, 지원기관 등 30명)이 가입해 있다. 지난 1년 동안 133차례의 각종 세미나를 개최했고, 지난 1년간 88건의 기업 애로과제 발굴, 41건의 지원과제 선정 등 성과를 거뒀다. 이 가운데 24건은 현재 산·학·연 공동기술과제로 선정돼 해결을 모색중이다. 이 과정에서 추진단은 20억3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미니클러스터의 성과 중에서 메카트로닉스 미니클러스터 회원업체인 AMC엔지니어링은 유기EL 제작장비 개발과제를 코디네이터의 지도를 통해 해결하기도 했다. 또 임베디드 시스템 미니클러스터의 회원사인 세영정보통신은 차량용 복합단말기 개발을 제안, 추진단의 공동기술개발과제로 선정돼 현재 기술개발이 진행중이며, 홈네트워크 미니클러스터 회원사인 오성전자는 리모컨의 성능 및 신뢰성 향상을 위해 현재 금오공대와 공동으로 해결방안을 모색중이다.
추진단은 미니클러스터의 활성화를 위해 올해는 클러스터 내에 5∼10명 안팎의 워킹그룹을 별도로 구성할 예정이다. 워킹그룹은 주로 현장을 방문해 제기된 각종 애로기술을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다. 아울러 각 미니클러스터 내에 세부 기술분야별로 서브 클러스터를 별도로 구성하기로 했다.
김규돈 산학협력팀장(46)은 “물론 계량적인 성과도 있겠지만 미니클러스터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역시 인적네트워크를 통한 신뢰구축”이라며 “앞으로 미니클러스터 내에도 세부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은 서버나 셀 단위로 묶어줘 전체 클러스터가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미=정재훈기자@전자신문, jhoon@
◆기고: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cdkim@e-cluster.net
2004년 6월 참여정부의 지역혁신정책에서 발표된 ‘혁신클러스터’라는 용어는 이제는 어느덧 가깝게 느껴지는 단어가 되었다. 마치 지역경제 발전의 상징이나 되듯이 전국적으로 클러스터 바람이 불게 한 주역은 바로 산업단지다. 우리나라를 혁신주도형 경제로 발전시키고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과제로 ‘산업단지 중심의 혁신클러스터’ 육성책을 가장 먼저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실무추진기관으로서 지난 해 3월 ‘혁신클러스터 선포식’을 시작으로 클러스터 조직으로의 전면 개편, 7개 시범단지 추진단 구성,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 등을 숨가쁘게 진행하면서 클러스터 추진 기반을 구축한 바 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UCSD)이 설립한 ‘UCSD CONNECT 프로그램’에 견줄 만한 한국형 혁신클러스터 운영시스템으로서 ‘미니클러스터’를 단지별 특화업종에 맞게 모두 48개를 새로 구성했다. 이들 미니클러스터는 9개월에 걸친 짧은 기간에도 1400여 기업이 참여해 1300여 회에 달하는 포럼, 세미나 등 다양한 교류협력 활동을 펼쳐 산업단지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업 첫해 추진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으니 문제는 이제부터다. 산학연관 네트워킹이 중요한 클러스터 사업은 단기간에 커다란 결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실리콘밸리, 시스타사이언스파크, 도요타 등 해외 선진클러스터가 우리보다 더 우수한 클러스터 형성조건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지난해 미니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첫 발굴된 560여건의 다양한 애로과제는 기업들의 클러스터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른 시일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 부담도 크지만 다소 늦더라도 기업들의 혁신의지와 경쟁력 확보 열망에 부응해 내실있는 클러스터 사업체계를 다지며 실익을 키워나가야 할 소중한 과제라 할 수 있다.
2006년 한 해는 지난해 다져진 클러스터 체계를 기반으로 많은 가시적인 성과가 본격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거대한 생산집적지인 우리 산업단지에 ‘클러스터’라는 소프트웨어로 ‘형질 변경’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산학연관 각 분야에서 적극적인 도움이 긴요하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한 보완과 수정을 통해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제 막 시작한 클러스터의 기운을 더욱 거세게 확대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러기떼의 V자처럼 함께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수십 년에 걸쳐 기반을 다지며 클러스터 문화를 일궈낸 선진사례에 버금가는 한국형 혁신클러스터의 우렁찬 고동소리가 산업단지의 여명을 깨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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