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가 절실히 필요했던 70년대, 수출은 우리나라의 절대적 과제였다. 수출 100억달러를 선진국 진입의 잣대로 삼고 전 국민이 품을 팔았다. 노동의 가치나 인권은 사실상 수출이라는 대명제 앞에 한낱 사치에 불과했다. 한국경제의 근원이라고 하는 여직공들은 하루 12시간은 기본이고, 그것도 모자라 철야근무를 밥 먹듯이 했다. 당시 대표적 수출공장으로 꼽는 봉제공장은 24시간, 명절을 제외하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재봉틀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같은 노력은 87년 11월 11일 열매를 맺었다. 우리나라 단일 업종으로는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노동집약 산업인 섬유산업이 수출에서 꿈의 숫자인 ‘100억 고지’를 제일 먼저 달성한 것이다. 섬유의 날은 산업의 역군인 여직공들이 밤을 낮 삼아 일한 ‘노력의 탑’이다. 섬유산업이 앞장서 우리 산업을 주도한만큼 현재 우리나라 섬유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산업역사에서 섬유는 굵은 획을 긋는 중요산업이면서 ‘보릿고개’의 기아를 면하게 해 준 효자산업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섬유산업은 맥을 못 춘다. 저부가, 사양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늘 붙이고 다닌다. 올해 섬유수출은 150억달러 남짓. 수출 100억달러 돌파 19년이 지난 지금 불과 50% 성장에 지나지 않는다.
섬유가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전자산업도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일주일 차이로 선수를 놓친 전자산업은 기념일을 제정하지 못했다. 이후 전자산업이 우리나라 수출의 근간산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념일 제정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이러한 굴곡의 역사를 지닌 전자의 날이 마침내 만들어질 것 같다. 수출 1000억달러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이달 말쯤 전자의 날을 제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섬유의 날도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IT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이제야 ‘전자의 날’이 제정된다는 것에 뒤늦은 반가움을 느낄 뿐이다. 추측컨대, 전자산업 관련 종사자는 산업종사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감을 갖고 생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념일쯤은 하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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