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차이나러시` 10년…새판을 짜자](중)좌절의 땅,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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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IT 시장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글로벌 대기업과 중국 내 토종기업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이 시장에서 국내 벤처기업이 설자리는 많지 않다. 올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인터내셔널IC 차이나 2005’ 전시회 한국관.

 “솔직히 말리고 싶습니다. 장기 레이스를 벌여야 하는 중국 시장에서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다면 벤처겠습니까. 차라리 그 노력으로 동남아나 중남미 시장을 뚫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5년째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는 대기업 임원의 지적이다. 5년쯤 지나니 이제 시장이 조금씩 보인다는 이 임원은 “그나마 대기업이니 가능했지 아니었으면 벌써 포기하고 철수했을 것”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혹독하게 들리지만 결코 과장은 아니다. 지난 2000년을 전후로 중국 시장에 들어왔다 울고 나간 벤처기업이 어림잡아 수백개에 이른다. 지사나 대리점이라는 이름만 걸어놓고 실질적인 거래가 없는 기업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공공 SI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는 벤처기업 A사는 5년 동안 6억원 가량을 투입해 중국 시장 진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결국 2002년 철수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영상 솔루션 벤처기업 B사는 지난 2002년 중국 현지 파트너를 물색해 3년째 중국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다. 이 회사 CEO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중국 비즈니스를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고 밝혔다.

 2005년 현재 중국은 좌절의 땅이다. 적어도 벤처기업에는 그렇다. 연간 300억∼400억달러에 이르는 중국 IT 시장이나 향후 5년 내 치러질 베이징올림픽, 상하이엑스포 등 중국 대형 프로젝트는 그림의 떡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우리나라 기업의 승전보가 속속 들려오지만 어디까지나 삼성전자·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국무원 고위관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몇 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IT에서 뒤질 것은 하나도 없다. 더욱이 중국은 이제 내수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다. 한국 기업은 중국 기업뿐 아니라 세계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보안업체인 베이징라이징테크놀로지의 제프리 마 연구개발부 부총경리는 “우리는 보안 기술과 제품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하고 있다”며 “시장 개척을 위해 제휴할 필요는 있어도 기술 습득을 위해 한국 기업과 굳이 손잡을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국 특유의 과장된 표현을 감안해도 허튼소리로 넘길 대목은 아니다. 사실 쟁쟁한 글로벌 기업과 중국 토착 기업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차지할 땅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실제 지난달 벤처기업협회가 베이징에서 개최한 베세토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자사 제품의 중국 시장 판매를 위해 상담장에 나간 벤처기업 가운데 일부는 되레 중국 IT 제품의 한국 시장 내 유통에 대한 제의를 받고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 진출과 정착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무엇보다 벤처기업의 ‘준비 부족’과 ‘잘못된 시각’이다. 내년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모 벤처기업엔 아직 중국어 한마디 제대로 하는 직원이 없다. 또 다른 벤처기업은 ‘제품이 좋고 중국 현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잘될 것이라고 느긋해한다.

 삼성SDS 중국법인장을 맡고 있는 이예선 상무는 “벤처기업에 가장 위험한 것은 몇 가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중국을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점”이라며 “제품이 뛰어나고 정확한 시장 조사·분석을 거쳤더라도 또다시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야 하는 곳이 중국 시장”이라고 지적한다.

 KOTRA 베이징무역관의 정성화 차장은 “중국 시장은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는 시장”이라며 “그러나 중국이 벤처에도 기회의 땅이 되기 위해서는 중국 내 기업 규정, 보안이나 지재권 문제, 중국 특유의 문화와 기질, 시장 분석 등과 같은 내용을 총체적으로 파악한 뒤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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