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사건의 후유증으로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지는 않나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적으로 주고받는 e메일이나 메신저의 내용까지 감시하는 소프트웨어(SW)가 잘 팔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할리우드 영화인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는 주인공이 정보기관에 의해 끊임없이 추적당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위성과 각종 첨단 기술을 통해 주인공의 위치가 쉴 새 없이 파악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당시 관객들의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 이후 품었던 궁금증은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에서도 이러한 위치파악시스템은 일반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동통신망이나 GPS 등을 통해 개인이나 차량 등의 위치를 파악해주는 ‘위치기반서비스(LBS)’가 바로 그것이다.
도덕적 논의는 차치하고 LBS는 긴급구조·교통정보 등을 서비스하며 IT 산업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교통·환경·의료·행정 등 사회 전 분야의 산업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LBS는 통신망의 기지국 수신신호를 이용하는 망 기반 방식, 단말기에 장착된 GPS 수신기 등을 이용하는 단말기 기반 방식 그리고 이들을 혼합해 사용하는 혼합 방식 등을 통해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한다. 간단히 말해 휴대폰 기지국의 전파를 이용하거나 혹은 GPS 수신기를 단말기에 직접 넣어 사용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LBS는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LBS 기술을 활용하면 고객이 백화점이나 할인매장과 같은 특정지역에 접근할 경우 고객에게 자동적으로 원하는 매장의 위치 또는 물품의 할인내용을 서비스할 수 있다.
또는 이동단말기기를 이용한 결제 및 처리 서비스, 영화관에서 10분 후에 상영될 영화에 대해서 영화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인쿠폰을 발송하는 서비스 등이 LBS의 예다.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고객 휴대폰 위치정보를 취득해 경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경호업체라든지 휴대폰 위치정보를 본인이 지정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친구 찾기’ 서비스도 이에 해당된다.
차량 운전중 사고를 당했을 때 차량에 장착된 텔레매틱스시스템에서 사고를 감지해 GPS로 파악된 위치정보를 보험사의 보상 관제 센터에 송신하면 위치정보를 수신한 보상직원이 현장으로 바로 출동하는 보험서비스는 이미 현실화됐다. 이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고객에게는 합의금 지급, 병원과 정비공장에는 병원비 및 수리비 지급, 경찰서에서는 보험가입 사실 증명서 발급 등을 현장에서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공식 발효되면서 휴대전화 등을 통한 LBS 사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업권 획득을 위해 관련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위치정보법 시행과 함께 위치정보사업자가 선정되면 위치정보 수집·활용 기술을 통해 물류·보안·상거래 등에서 위치정보관련 산업이 본격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통부는 위치정보 관련 산업시장이 올해 8500억원, 2007년에는 1조66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는 국가권력에 의해 위치정보를 포함한 개인의 모든 정보가 오·남용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LBS는 위치정보의 안전성을 보장하면서 개인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서비스로 발전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휴대폰·개인휴대단말기(PDA)와 같은 모바일 기기의 안전성과 무선통신 사업자 간의 위치정보 획득 및 서비스 제공에 관한 표준의 뒷받침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기존의 비즈니스가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영역에서 고객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정회우 동부정보기술 상무 hwchung@dongb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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