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 역사 동안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급변해 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좁은 국토와 한정된 자원의 한계를 극복해 빈곤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출’을 산업 정책의 1순위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국민을 먹여 살리는 대표산업도 50년대 농수산물로부터 시작해 의류신발·화학·기계철강·건설산업을 지나 현재의 반도체·정보통신기기·자동차산업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계속해 왔다. 이런 변화 속에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최근 경제성장 정책의 방향을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 가닥을 잡고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 이를 구체화해 ‘IT839전략’을 선보였다. IT839전략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정부는 현재 189조원 규모인 IT생산을 오는 2007년까지 400조원으로 늘리고, 고용 규모도 121만명 수준에서 50만명까지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9대 신성장동력 산업 선정을 통해 IT산업이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9대 신성장동력이 반도체 등 지나치게 하드웨어 부문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9대 IT산업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프트웨어산업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이다. 이를 입증할 구체적 사례는 일상화된 휴대폰만 봐도 알 수 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제품 가격 가운데 소프트웨어 관련 원가가 60% 이상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국방 및 항공장비 개발비 중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는 최근 연구조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중 전투기는 소프트웨어 개발비 비중이 극히 높은데 B2폭격기가 65%, F-22는 80%에 이른다. 특히 미국 등 전투기 관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기기를 판매하되 소프트웨어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기계산업 역시 메카트로닉스 등 소프트웨어 관련 부문이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소프트웨어산업을 경쟁적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현실을 보면 아직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다. 대부분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은 자본력이 극히 영세하며 고급 기술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쏟아붓는 마이크로소프트·IBM 같은 외국계 공룡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현실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업체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시장을 지키지 못한 업체가 해외에서 성공하기는 힘들다.
연초에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올해를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의 원년으로 삼자’고 선언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9대 신성장동력이 미래 한국경제의 주력 산업으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선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정부가 재차 인식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다른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산업을 ‘기간산업’이라고 부르며 ‘산업의 쌀’이라는 별칭까지 부여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수출강국을 표방하던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의 기간산업은 ‘철강’이었다. 또 90년대 이후에는 삼성전자로 대변되는 ‘반도체산업’이 다른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 패러다임이 유형에서 무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기간산업을 고민할 때다. 즉 한국이 고부가 IT기술과 바이오기술 등을 주축으로 한 ‘과학기술 중심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타 산업에 부가가치를 심어 줄 소프트웨어산업이 새로운 기간산업이 돼야 한다. 바이오·나노·우주항공 기술 등 각종 고부가가치 산업의 중심에 소프트웨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이 미래 기간산업이 되기 위해선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이에 지금이라도 정부·업계·학계가 그 중요성을 재차 확인하고 먼 안목으로 끈기있게 소프트웨어 부문을 육성해 나가야 한다. 소프트웨어산업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필수이기 때문이다.
◆티맥스소프트 김병국 사장 bkkimgochon@tm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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