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101번 도로는 특별히 러시아워가 없을 만큼 늘 오가는 차량으로 넘쳐난다. 101번 도로는 실리콘밸리를 관통하면서 IT·NT 등 ‘기술 꽈리’와 벤처캐피털·로펌 등 ‘인프라 꽈리’를 연결해준다. HP·인텔·시스코 등 다국적 첨단기술 기업군은 물론이고 구글·야후·e베이 등 인터넷기업들도 101번 도로의 단골이다.
101번 도로를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실리콘밸리가 첨단기술과 산업서비스만 연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 태어나 실리콘밸리로 온 사람들의 비중이 지난 2000년 34%를 넘어섰다. 인종 분포상 백인계가 50%에 미치지 못하고 아시아계가 25%를 차지한다.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기로 유명한 실리콘밸리는 인근 스탠퍼드대나 버클리대처럼 중국·인도계 인력을 빼놓고는 논하기 어렵다.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기후만큼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폭넓고 개방적인 사고가 101번 도로를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
우선 101번 도로와 접한 산업이 변신을 거듭했다. 지난 60년대 방위산업에서 집적회로(IC)산업으로 탈바꿈하고, 70·80년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PC산업을 거쳐 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산업이 등장했다. 이렇게 실리콘밸리가 성장동력을 바꿀 수 있었던 기저에는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끊임없는 변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분야는 70·80년대부터 아시아 생산업체와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초고속 마이크로프로세서, 팹리스 디자인을 선도했다. 컴퓨터도 아시아로 아웃소싱을 확산하는 가운데 무선통신·데이터스토리지 등으로 변화를 꾀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인도·중국 등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토대로 디자인·엔지니어링·마케팅 위주로 특화를 시도했다.
글로벌화가 양방향으로 이뤄지면서 실리콘밸리는 우수한 인적자원 유입 및 혁신 기업가 정신의 산실 역할도 해내고 있다. 예컨대 인텔이 생산 및 제조과정에서는 애리조나주나 뉴멕시코주의 지역적 경쟁우위를 활용하고 있지만 디자인 및 시험기능은 캘리포니아주에 유지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비교우위를 보여준다.
이제 실리콘밸리는 더 나아가 ‘융합(convergence) 밸리’로 변신하고 있다. IT가 새롭게 응용기술력을 확산시키면서 BT·NT와 융합하고 있다. 이제 실리콘밸리는 더는 ‘실리콘(silicon)만의 밸리(valley)’로 불리지 않을 만큼 융합기술의 모태가 됐다.
이처럼 새로운 융합 내지 응용기술이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면서 바이오 및 나노산업에서도 실리콘밸리가 리서치·디자인·엔지니어링·마케팅 기능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른바 ‘두뇌 환류(brain circulation)’도 실리콘밸리 클러스터가 첨단 산업의 중핵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반석 역할을 했다. 2001년 실리콘밸리 경기 하강시 인도 전문인력 2000여명이 본국으로 돌아가 오늘의 소프트웨어 강국 인도를 만들면서 실리콘밸리와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 좋은 사례다.
실리콘밸리의 융합 현상은 비단 기업과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01번 도로의 허리에 위치한 팰러앨토시와 멘로파크시에는 미국 벤처캐피털의 3분의 1이 모여 있다. 벤처캐피털은 혁신 기술로 무장한 신생 벤처의 든든한 인큐베이터다.
실리콘밸리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기업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이는 글로벌 경쟁우위 확보 차원에서 ‘경쟁하기 위해 합심하는’ 합종연횡으로 이어져 상호 발전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101번 도로를 통해 바라보는 실리콘밸리는 기업과 기술에서 더 나아가 시스템·휴먼캐피털 측면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융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사무실 창문 너머로 101번 도로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도 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해 휴먼캐피털이 융합되고 시스템이 통합되는 실리콘밸리의 변신을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것이다.
◆김창규 산업자원부 미국 실리콘밸리 주재관 kkim4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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