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인젠 임병동 사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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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창립 기념 파티에서 직원들과 함께 촛불을 끄고 있다

 회사설립 1년 만에 최대위기가 찾아왔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멤버 거의 대부분이 한꺼번에 회사를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남은 사람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던 해커들과 나. 외부에서는 회사가 반쪽이 난 것이 아니라 반도 남지 않았고, 망한 것으로까지 생각했다. 나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런 분열은 이미 초기부터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평소 친분이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 친하던 사람들끼리만 창업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젠은 연결은 되지만 창업멤버 6명이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믿고 시작했다.

 어쨌든 회사가 반쪽 나고 보니 문제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수금까지 했던 모 은행의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지 않은 채 개발인력이 나가버려 중간에 영업했던 대기업의 매출까지 다 배상해야 했다. 그동안 개발하던 침입탐지시스템(IDS) 등을 계속 개발할 직원도 없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대외적으로 기업신인도가 너무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마음은 평온했다.

 그런 와중에 생각지도 않은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창업 후에 서너 번 밖에 만난 적이 없는 선배가 아무 조건도 없이 개발자를 파견하며 인젠의 개발을 도와줬다. 마침 우리가 개발하려던 침입탐지시스템(IDS)의 기반이 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킹과 관련된 부분만 첨가하면 과거보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금은 없지만 6개월간 아예 영업을 정지하기로 했다. 그 사이 IDS을 완전히 개발하고 남아있던 해커 등을 활용해서 보안컨설팅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제는 자금이 완전히 말라 있었다는 것과 보안컨설팅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아서 고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나마 인젠의 해커들은 워낙 유명하고 유능하다 보니 BC카드, 부산은행 등에 작은 규모의 컨설팅을 수주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보안컨설팅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보안컨설팅의 시작이 됐다.

 자금은 이리저리 정말 어렵게 구하고 다녔다. 내가 인젠을 창업하면서 마음먹은 원칙 하나는 사업하면서 자금문제, 영업문제로 평소 아는 사람들에게 신세지지 말자는 것이었고 이 원칙은 초기 6년간 거의 지켜졌다. 투자를 여러 번 받다 보니 보통 벤처CEO와는 달리 경제학과 출신이라 인맥이 좋은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값이면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서 받고 싶어하다 보니, 같은 값이면 아는 선배에게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선배와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나는 내가 정한 원칙을 지켜나갔다.

 정말이지 힘든 시기였다. 제품은 예상보다 늦게 나왔고, 나왔다고 바로 팔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6월에 SKT와 새제품 계약을 하게 됐다. 운이 따랐다. 매출이 급격히 신장해가는 과정에 벤처 열풍도 불기 시작하면서 창업할 때에는 생각도 못했던 좋은 시절이 갑자기 다가왔다. 나쁜 상황을 헤쳐나오고 보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생각났다.

 bdlim@in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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