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로, 가을이 활동하기 좋은 계절임을 일컫는다. 한자어에 추(秋)가 들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을과 연관시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천고마비의 유래는 추고마비(秋高馬肥)다. 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까지 활약한 흉노족은 긴 겨울을 날 양식 마련을 위해 매년 가을이면 중국 북방 변경의 농경지대를 약탈했다. 유목민족인 흉노 처지에서는 말이 살쪄 전투력이 최상에 오르는 가을은 약탈의 최적기였다.
중국 통일 후 진시황은 이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한무제 역시 흉노로부터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을 지키기 위해 장성을 위먼관(玉門關)까지 연장했다. 이후 남북조시대와 수나라를 거치면서 축성은 계속돼 무려 6400㎞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로 남게 됐다.
영토가 있는 한 외적의 침입은 피할 수 없다. 진시황의 방책은 장성 축조였다. 완성에 수십수백년이 걸릴 줄 알면서도 그는 축성을 감행했다.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인터넷 민원서류 위변조 가능성과 그 방법이 공개되면서 대책 마련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행정자치부는 인터넷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고 대책을 수립중이다. 지금까지 나온 방안은 행정정보의 공유 확대, 위변조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정보보호 의식 강화다. 영원히 뚫리지 않는 방패는 없다. 통계적으로 크래킹 기술은 매년 2배 이상 발전한다. 날로 지능화되는 크래킹에 대비하려면 정보보호기술의 첨단화는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예산 중 5%(지자체 포함시 3% 미만)를 정보보호에 투자한다. 선진국의 10%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전화위복이랄까 이번 위변조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정보보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보보호 예산도 확충할 태세다. 이참에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최저가격입찰제도를 개선하고,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정보보호 소프트웨어만 분리 발주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의욕은 지속돼야 한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쉬 사그라져서는 절대 안 된다. 늦지 않았다. 진시황이 흉노족에 대비해 만리장성을 쌓았듯 크래킹에 맞선 정보보호의 장성을 차근차근 장기적인 안목으로 쌓아 가야 할 때다.
최정훈기자@전자신문, j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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