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미
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 개정 법률안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규정이 있다.
지난 97년 제정된 벤처기업전용단지의 지정 및 개발과 관련된 조항으로, 정부는 관련 규정과 세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이번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용어조차 생소한 이 규정은 정부 의지대로 올 정기 국회에서 최종 통과된다면 입법 후 8년여 만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 규정은 개정안을 수립한 중기청 해당 부서에서조차 당시 규정의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문건을 들춰봐야 할 정도로 익숙하지 않았다.
정부는 제도 폐지배경에 대해 표면적으로 제도 시행 후 단 한 건도 단지 지정 실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제도가 호응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확연히 드러난다.
정부는 당시 벤처산업 육성 차원에서 각 특별시장이나 직할시장, 시·도지사들이 벤처기업의 영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산업단지나 지방산업단지로 벤처기업전용단지를 지정·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지자체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지자체들은 산업단지를 일반 제조업 위주로 지정했는데, 정부가 규정한 벤처기업전용단지는 제조가 아닌 영업 활동에만 치우친 단지로 조성토록 했기 때문이다.
단지 지정 신청이 단 한 건도 없었던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상 실효성이 전혀 없는 법이었던 셈이다.
국가에서 정하는 법이나 규정은 한 번 정해지면 바꾸거나 폐기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은 법이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실제로 효력이 없다면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 법을 한 번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행정력과 기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만들어 놓은 법이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채 폐기된다면 ‘행정력 부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국민이 원하고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법만을 입안해 반영한다면 정부의 행정력 낭비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