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세계 최고` 기술과 윤리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의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IT는 자랑스런 분야고 세계 최고 수준인데, 줄기세포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에서 ‘수준’이라는 말을 빼고 ‘세계 최고’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말 그대로 줄기세포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아니라 주도하고 있다고 극찬한 것이다.

 올해 들어 발표된 우리 생명공학계의 연구성과들을 보면 그야말로 놀랄 정도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복제 개 ‘스피너’의 탄생, 냉동 잔여 배반포기 배아 기술 미국 특허 획득, DNA B·Z형 접합구조 구명, 생체시계의 새 유전자 발견 등 하나같이 세계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 것들이다. 생명공학 분야만큼은 올해를 ‘한국의 해’라고 단언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우리가 생명공학 분야의 쾌거에 열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고로 전신마비나 하반신마비가 된 척수장애인들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일이다. 난치병, 불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노벨 의학상도 기대된다. 민족적 자긍심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예상되는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서도 모두 기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인들이 모두 우리 마음 같지는 않다. 더구나 지금은 기술경쟁시대다. 기술주도권을 빼앗긴 선진국들로선 경계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계 줄기세포 연구 허브 구축을 선언하자 선진국 언론은 물론이고 과학자들이 기술 및 연구 자금 집중화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미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발전에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우리를 경계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윤리적 문제를 들먹거리기도 한다. 줄기세포를 비롯한 생명공학 연구는 생명의 본질과 직결된다. 생명의 창조 및 정의를 다루고 동물이나 인간 실험이 필요하다. 때문에 생명공학 분야 연구에서 생명윤리 논란은 필연적이다. 생명윤리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그 논란은 갈수록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인간복제, 난자 밀매 등 앞으로 무수히 제기될 문제에 대한 검증작업이 필요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미 제러미 리프킨의 ‘바이오테크시대’와 같은 미래학 연구들과 ‘가타카’와 같은 영화들은 인류의 미래가 유전자 계급사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던져주고 있다. 생명과학 연구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조화롭게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풍요와 행복이 보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생명과학과 생명윤리의 대화와 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변동론’의 저자인 오그번의 문화지체론이 시사하듯이 기술발전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의 이용에 관한 사회윤리를 합의를 통해 도출해 낸다는 것은 항상 괴리와 어려움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명공학의 성과에 밀려 생명윤리가 뒷전에 묻혀서는 안 된다. 어떤 과학기술이든 확산과 통제라는 두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래야 무분별한 이용 확산을 막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생명공학 분야의 선두에 선 우리나라가 이런 기술을 적절히 통제할 만한 윤리관을 정립하고 제도적 장치 마련에 먼저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찾아 나가야 한다. 생명공학 기술뿐만 아니라 생명윤리에서도 세계 중심 역할을 하는 허브가 돼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바이오강국이 될 수 있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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