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책도입 명분 간데 없다"

박승정

 본말이 전도됐다. 정부가 25일 내놓은 단말기 보조금 정책 방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이다. 사업자나 제조업체는 이번 정책 방향을 놓고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는데 열심이지만, 일각에서는 정책도입의 명분을 거둬들인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는 단말기 보조금 금지정책의 이유로 과소비방지와 외화유출 방지란 명분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현재 정부가 내놓은 ‘단말기 보조금 정책 방향’에는 이같은 명분은 간데 없고 비대칭 규제가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 정책안의 핵심은 3년 이상 장기가입자와 신규서비스 가입자에 보조금을 지급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용자간 형평성을 추구하고 신규서비스 시장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제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돕겠다는 명분도 추가됐다. 과소비 방지란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명목상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저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당초 의도와는 달리 또다른 명분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일관성이란 원칙은 언제, 어디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이용자,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또다른 잣대를 들이밀며 입법을 시도하는 것 자체도 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점을 들어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이 법의 부처협의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반응도 냉담하다.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정통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통신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업체, 이동통신가입자 등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3개 이동통신 사업자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역력했지만, 결국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짜깁기식 정책’이란 평가가 나오겠는가.

정책 당국의 원칙과 이에 따른 일관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정책안은 그러나 사실상 보조금을 허용하면서 꼬리표만 몇개 단 꼴이다. 이쪽 저쪽으로부터 포화 맞기 싫어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맞을 것이 있다면 맞고 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청회를 통해 걸러지겠지만 정책 당국의 혜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IT산업부·박승정기자&전자신문, sj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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