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차라리 이통사 국유화를"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집요한 몰아붙이기에 이동전화 요금이 내려가게 됐다. SK텔레콤이 먼저 ‘항서(降書)’를 썼다. 내년부터 발신자번호표시 요금을 무료화하기로 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사실상 요금을 인하했으니 KTF와 LG텔레콤의 ’동참’은 시간 문제다.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울며 겨자먹기식 조치라 ‘항복’이 틀림없다. 기업들이야 온갖 논리를 앞세워 ’방어’에 나서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우군이라 여기던 정보통신부조차 막판에는 슬그머니 한발 물러섰다. 상황이 이쯤되면 제깟 기업들이 무슨 힘이 있을까.

 정치권과 시민단체, 물가당국은 전리품을 챙겼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이통요금을 내리도록 했다.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과시할 수 있었다. 3000만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니 박수가 쏟아진다. 호주머니 가볍게 해주는 데 마다할 사람 없다. 이통요금은 정치권과 시민단체엔 단골메뉴다. 여론을 업으니 거칠 것도 없다. 그래서 국회만 열리면, 선거때만 되면, 이통사업자들은 홍역을 앓는다. 내년에도 지방선거가 있고 국정감사도 있다. 아마도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것이다.

 하지만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자. 기업이 무엇인가. 돈 버는 곳이다. 자선단체가 아닌 바에야 흑자를 못 내면 죄악이다. 흑자 많이 낸다고 요금 내리면 장사는 또 뭐 하러 하나. 물론 인하론자들은 손사레를 친다. 삼성전자가 이익 많이 낸다고 휴대폰 가격 내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통신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가구당 지출비용도 크고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그래서 과다한 이익 혹은 부적절한 요금은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어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해야 한다. 이통사들이 적자 내면 같은 논리로 요금 올려주어야 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물가당국이 앞장서 부르짖어야 한다. 흑자면 내리고, 적자면 ‘너희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 기업이 파산하고 일자리가 없어진다. 빚 얻어 연명해도 결국은 국민 부담이다. IMF때 이러한 현상은 신물나게 봤다.

 이익 많이 내 곳간에 쌓아둔 사업자는 예외로 치자. 아직도 수조원 퍼부은 채 주주들에 배당 한 번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근근이 버텨오며 이제야 빈곤에서 탈출했다. 임직원의 땀과 눈물도 있다. 흑자 한번 내 보겠다고 한 겨울 지하철역에서 전직원이 판촉도 한다. 정글에서 살아남겠다며 밤 새워 상품 개발하고 네트워크 수리 한다. 그들과 그들 가족에게 “월급 받으니 됐다”고 한다면 뭐라 하겠나. 폭리 취해 말도 안되는 이익 냈다면 모르되 장사하는 사람들의 기본 이윤은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후발주자들의 이익 규모라 해야 목숨 걸고 일한 직원들 몇 년 만에 보너스 한 번 쥐어줄 수준이다. 하물며 한 해 2000억∼3000억원 흑자내 봐야 신규 투자 재원 확보는 어림도 없다. 남는 것은 주주들에 또 손벌리는 일이다. 이쯤 되면 기업이 아니다.

 통신요금은 기업과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좌지우지할 건가. 요금 내리기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우선 할 일은 따로 있다. 바르고 효율적인 통신사용 환경 조성은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청소년이 한 달 몇 만원씩 사용하는 무분별한 휴대폰 즐기기에서부터 사회적 역기능 문제까지 손댈 일은 많다. 1000∼2000원 요금혜택보다, ’똑똑한’ 소비자들의 온전한 힘으로 수만원의 요금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쪽에도 눈을 돌려보란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이 난리법석 지겨우면, 아주 쉬운 길도 있다. 업자들의 냉소처럼 차라리 통신업체를 국유화하라.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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