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칼럼]전자정부 새롭게 출발하자

 전자정부 구축. 해야 할 일이다. 힘들어도 돌아서라도 가야 할 길이다.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전자정부 구축은 행정 선진화를 위한 필수장치다. IT강국이라는 우리가 이 사업의 선두에 서는 건 옳은 선택이다. 그런 전자정부가 요즘 동네북 신세다. 언론의 꾸지람도 매섭다. 일부에서는 이 사업 추진에 회의적인 반응도 보인다. 인터넷 민원서류 위·변조 사건이 도화선이다.

 얼마 전까지 전자정부 구축은 우리의 자랑거리였다. 유엔도 우리나라 전자정부를 세계 5위, 아시아 1위라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 191개국 중 5위라면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서울시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와 ‘전자정부 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하기도 했다. 나라 안팎으로 뽐냈던 전자정부 보안에 허점이 드러났으니 정부 체면도 말이 아니다. 특히 전자정부가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늑장을 부리다가 화를 부른 것인가. 전문가들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킹은 예고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어느 모임에서 전직 고위관리가 이런 말을 했다. “기술세계에서 ‘절대’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첨단 보안기술을 적용해도 이를 뚫을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다.” 창과 방패의 논리다. 이 고위관리는 “정책입안자는 기술 분야에서 ‘절대’라는 말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토를 달았다. 사실 기술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자정부도 선한 얼굴만 있는 게 아니다. 양면성이 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열린 정부, 투명한 정부, 국민에 서비스하는 정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 현재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등 400여종의 민원서류를 안방에서 신청할 수 있다. 양방향 대화가 가능해 국민이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행정체계가 바로 전자정부다. 긍정적인 면만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다.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해킹 등이 부정적인 얼굴이다. 이번 위·변조 사건도 부정적인 얼굴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엊그제 당정협의를 갖고 주민등록등본 등 행정기관 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24종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이 민원인에게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07년부터 행정·공공·금융기관이 상호 전산망을 통해 주요 행정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또 10월 말까지 일시 중단된 인터넷 민원서류 78종에 대한 발급 서비스를 재개키로 했다. 옳은 처방이다. 다만 다소 뒤늦은 감은 있다. 사건이 터진 즉시 해당 부처가 전문가들과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 내놨어야 옳다. 불편함에 시달리는 국민 처지를 배려해야 한다. 굳이 당정협의를 통해 대책을 발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대책을 내놨으니 최대한 빨리 인터넷 민원서류 발급을 재개해야 한다. 그리고 민원서류를 대폭 줄여야 한다. 현재 민원서류만 638개에 달한다. 이번 기회에 관행적으로 제출했던 민원서류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서류 간소화를 통해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부처 간 정보공유 시스템 구축으로 대체가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술로 정보화 역기능을 원천 봉쇄할 수 없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보윤리의 실천자이자 감시자가 될 때 그 해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 일로 전자정부 구축에 다소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허나 전자정부라는 목적지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특히 뒷북 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한 번이면 족하다.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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