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R과 상생

이호준

 코스닥 상장기업 A사의 IR 담당 임원인 김 이사(가명)는 회사의 긍정적인 면을 널리 알려 호재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면은 충분한 설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주 업무다.

 하지만 간혹 긍정적인 재료의 효과를 최소화하는 기이한 업무를 맡기도 한다. 가령 특정 대기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률이 업계 평균치를 넘어설 경우 이를 굳이 홍보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이를 홍보하면 자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주가가 오르겠지만 주요 고객인 대기업으로부터 단가하락 압력이 거세져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회사의 수익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김 이사만의 고민은 아니다. 대기업에 부품이나 장비를 납품하는 기업이 주를 이루는 코스닥기업의 IR 담당 임원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부딪히는 일이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사업을 수주해도 공시에 앞서 거래소나 금융감독원보다는 고객사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면 혹여 고객사로부터 ‘장사 잘되네’라는 핀잔을 들을까 봐 걱정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소기업의 ‘상생문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았지만, 이른바 ‘갑과 을’인 대·중소기업의 관계는 아직 수평을 찾지 못한 듯하다.

 IR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이 자본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얻기 위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홍보활동’이다. 가뜩이나 대외 환경에 휘둘리는 변수가 많은 코스닥 중소벤처기업들로서는 정당한 평가를 위한 활동마저 제약(?)받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삼성전자가 지난주 33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반도체설비 투자 계획을 밝힌 이후 관련 부품·장비기업의 주가가 연일 급등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업은 중소벤처기업에는 금맥과 같다.

 때마침 코스닥 시장이 연일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기업의 작은 양보와 이해가 코스닥 중소벤처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대·중소기업 상생이 꼭 거창한 협력사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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