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문화 다양성과 IT

지구 상에는 생물이 300만∼4000만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되나 이 중 분류된 것은 140만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들보다 훨씬 많은 종이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케티츠가 쓴 ‘멸종, 사라지는 것들’에 따르면 인간의 탐욕으로 매년 3만종이 넘는 동식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자연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유전적인 생물다양성(종 안에서의 다양성), 종 생물 다양성(종 사이의 다양성) 그리고 생태계 생물다양성(생태계 사이의 다양성)의 여러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러한 다양성은 지구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온 커다란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유전자 다양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하나의 종이 단일유전자로 획일화된다면 외부의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종 전체가 한꺼번에 절멸해 버리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의 역사에도 많은 역할을 해왔다. 인간에게 알려진 먹거리 중에서 특히 감자는 유럽과 미국 대륙의 인구변동에 기여한 대표적인 식물이다. 원래 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이 원산지인 감자는 1555년경 유럽으로 전파됐는데 곡식보다 열량이 높고 단백질, 비타민C를 공급해주는 이상적인 식품으로서 경작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유럽인구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1845년 감자에 치명적인 부패균이 번지면서 수확이 급감, 식량부족으로 1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150만명 이상이 기아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함으로써 미국 대륙 인구증가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감자라는 식물의 존재는 유럽과 미국 대륙의 역사 흐름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생물 다양성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양성은 환경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과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이는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IT산업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앞서 나가고 있어 뿌듯하지만, 이들 IT산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의 IT에 소프트웨어와 문화가 접목돼 차별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화를 단순히 디자인이나 캐릭터와 같은 하위 구성요소 수준에서 이해하거나, 기껏 애니메니션이나 영화와 같은 콘텐츠 산업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의 형태와 지식의 표현체계이면서 철학과 정신세계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유전자들은 상품이나 서비스, 산업에 존재의미와 개성, 차별성을 부여해 주는 근본바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애플만의 철학과 삶에 대한 자세, 디자인으로 구현된 많은 애플의 제공물은 애플을 경쟁자와 차별화하는 핵심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문화유전자들은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장기회를 만들어내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개인 간의 친밀한 네트워크가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를 배경으로 싸이월드라는 독특한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보급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문화 간의 다양성, 문화 내에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는 사회는 환경 변화에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사회는 단일민족·단일문화에 과거 독재의 역사까지 겹쳐 지금까지 획일화된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왔다.

 획일은 방향이 정해졌을 때는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환경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돼 일순 절멸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앞서서 보급된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과 각종 인터넷이용 환경이 이러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은 다양한 문화를 서로 알리고 이를 확산시키는 순기능도 하지만, 동시에 유행과 흐름을 획일화해 문화의 다양성을 낮추는 역기능도 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환경이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죽이는 쪽이 아니라 이를 더욱 더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IT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지고 있던 문화 다양성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새로운 문화유전자가 생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화 유전자의 확보야말로 우리를 세계의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며, 우리 IT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compino@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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