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당뇨병에 시달리는 통신 시장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면 손해를 보는데 어떡합니까?”(통신사업자)

 “지배적 사업자들은 지금도 1조∼2조원의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고 있습니다.”(규제당국)

 환자는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우는데 정작 의사는 아직 건강하니 엄살 피우지 말라는 식이다.

 병을 고치는 데는 진단이 우선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가능하다. 오진은 또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게 만든다. 때론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깊게 만든다.

 통신서비스 시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때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던 통신시장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일종의 당뇨증세다. 음식(시장)을 마음대로 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태다. 병원에 찾아갔더니 의사는 그저 종전처럼 생활(투자)하라는 진단을 내린다. 환자의 상태는 아랑곳 없다. 환자의 몸은 예전에 ‘잘나가던’ 그 체력이 아니다. 경쟁심화로 소모적인 마케팅 비용은 급증하는데 가입자 포화로 매출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체력 소진만 눈에 띄게 드러날 뿐이다.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도 닮았다. 통신서비스산업의 성장이 멈출 경우 전후방 산업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하다. 장비와 콘텐츠 산업의 성장동력도 불안해진다. 당뇨는 체력보강을 통해 끊임없이 체질을 개선해주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당뇨를 ‘부자병’으로 치부하는 시각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기가 일쑤다.

 의사 처지에선 물론 건강할 때 왜 건강을 지키지 못했느냐는 야단은 칠 수 있다. 또 여기저기서(유사 규제기관) 저마다 고쳐주겠다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 의사의 본분은 질책이나 훈수가 아니다. 병을 하루 빨리 고쳐주는 것이다. 환자의 몸상태가 전과 같지 않으면 그에 맞는 약을 주면 된다. 호황시절의 처방전을 침체한 환자에게 그대로 써주는 것은 분명 오진이다. 치료는 등한시하면서 내 환자라고 다른 병원으로 못 가게 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의사로서 직무유기다.

 환자 자신의 치유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진행중이다. 저마다 신규서비스 개발로 시장을 확대하고 가입자당 매출(ARPU)을 늘리려고 애쓴다. 리스크가 큰 해외시장까지도 기웃거린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신규서비스는 새로운 시장 창출보다는 결합상품식으로 기존 가입자 지키기 정도의 약발이다. 시장 전체를 바꿀 만한 서비스가 아니고는 소비자들이 통신비를 추가 지급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게임이다. 종전처럼 투자만 하면 가입자가 펑펑 늘던 환경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그마저도 각종 크고 작은 규제의 그물에 걸려 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체질개선은 환자 혼자만의 힘으론 역부족이다.

 체질개선을 위한 처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체력보강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규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통신뿐 아니라 방송·금융·교육·의료 등으로 외연을 넓혀 주면 된다. 컨버전스로 창출되는 시장만이 통신서비스의 지평을 넓히는 유일한 방안이다.

 또 하나는 시장 전체의 골격을 바꾸는 일이다. 좁은 시장에 많은 사업자가 몰려 있다 보니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업자 간 M&A로 시장구도를 재편하는 것도 더는 늦출 수 없는 대안 중 하나다. 환자의 상태(시장 상황)에 따른 좀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명의는 환자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그 환자는 누가 뭐래도 우리 산업의 성장엔진 아닌가.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