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고유가에서 벗어나는 길

국제유가가 치솟고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 값이 되는 두바이유는 배럴당 57달러 선에서 출렁이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36∼37달러 선이었던 것에 비하면 1.5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지금의 여세로 봐서는 60달러도 곧 넘을 듯하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경기회복의 전망도 헤아리기 힘든 상황에서 유가마저 우리 경제의 숨통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유가 상승에 대한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비관적 예측이 만만치 않다. 중동발 ‘3차 오일 쇼크’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초기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 경기 회복의 신호”라는 낙관론이 주류를 이뤘으나 요즘에는 “이대로 가면 세계적인 에너지 쇼크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급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유가 급등의 충격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는 데 있다. 석유 사용량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면서 원유 수요가 많은 석유화학 등 중공업 비중이 큰 자본 집약적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IT산업이라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수출의존도 또한 높아 유가 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산 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돼 수출 둔화를 피할 수 없다. 지금껏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둔화된다면 경기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수출 둔화가 내수침체를 더욱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유가 상승에 뒤따르는 경제 현상이 특히 골치 아픈 것은 물가 상승과 소비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이는 소비를 위축시켜 내수회복을 더욱 어렵게 한다. 연구기관별로 차이는 있지만 유가가 연평균 10%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0.2∼0.3%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0.2∼0.3% 떨어진다고 한다. 선진국 경제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고유가가 지속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2%포인트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최근 유가 상승이 종전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처럼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또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생산 다각화에 따라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최근 유가 상승세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그다지 크지 않다. 지금까지는 원화 강세 덕분에 국제 유가 급등만큼 국내 유가가 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은 다르다. 원화의 추가 절상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제 유가 상승을 완충할 만한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최근 여기저기에서 석유에 붙는 세금을 낮추어서라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유가와 관련된 논의는 여기서 멈추고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물론 특별히 뾰족한 묘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는 잉크가 아닌 석유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석유는 인간 문명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떠맡아 왔다. 이제 그 전통 에너지 자원이 몰고 오는 거센 도전에 맞서 적절한 응전에 나서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응전은 평소 만반의 준비를 해 온 자만이 효과적으로 치러 낼 수 있다. 석유의 귀중함을 깨닫고, 그 효율적인 사용과 대체 에너지 개발에 관심을 기울인 자가 그들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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