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시내전화 시장에서 2위 사업자가 10%는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1위 사업자가 96%로 독점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번호이동성제로 내심 20%까지 바라봤으나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10%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8월 현재 하나로의 점유율은 6.4%에 그쳤다.
정확히 1년 전 윤 전 사장은 하나로의 비전을 ‘종합 멀티미디어 사업자’로 잡았다. IPTV를 통한 방송 진출도 물론이다. 망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투자도 공염불이라 봤다. 그래서 유력 홈쇼핑 업체를 물리치고 데이터방송 사업권도 따냈다. 그러나 지금 IPTV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윤 전 사장은 와이브로(2.3㎓ 휴대인터넷)가 인터넷 신화를 일군 하나포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유무선 통합 인터넷으로 돌파하면 인당 매출액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런 와이브로를 자신의 손으로 접었다.
윤 전 사장이 지난 2003년 취임 이후 구상한 사업 중 유일하게 의도한 대로 풀린 것이 있다면 두루넷 인수를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가가 가치에 비해 비싼 것 아니냐는 시비에 휘말렸다.
결국 윤 사장은 하나로의 사령탑 자리에서 내려왔다. 경영악화의 책임이건 소문대로 외자와의 이견 때문이건 낙마했다. 물론 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는 점에서 보면 윤 전 사장은 실패한 경영인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윤 전 사장을 탓하기 전에 한국의 통신시장이 후발사업자에, 소규모 자본에, 중소 사업자에 기회를 줄 만한 환경인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통신 시장이 아무리 대자본만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고는 하지만 매출 1조5000억원에 직원이 2000명이 넘는 거대 사업자마저 ‘환경’을 탓하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 시장에 도전하고 응전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한국의 통신 시장은 대자본은 없지만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창출해보려는 기업가에게서 돈 벌 기회를 점차 박탈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윤 사장의 사퇴를 외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