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
올해 ‘2000억 클럽’ 고지를 목표로 달리던 주성엔지니어링·케이씨텍 등 반도체·FPD 장비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매출목표를 하향 조정하면서 목표 달성을 1년 뒤로 미뤘다. 이는 증시에도 만만치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반도체·FPD 장비는 상반기 코스닥시장을 주도해 온 대표적 업종이기 때문이다.
관련업계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이제 막 8월에 진입한 상황. 제작기간이 길다는 장비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은 올해 실적에 반영할 수 있는 매출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이 실적 하향 조정은 정말로 더는 매출을 높일 가능성이 없는 시점에서 ‘등 떠밀리듯’ 발표한다.
그렇다면 서둘러 하향 조정 발표를 한 배경은 무엇일까. 장비업계 CEO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작은 가능성에 매달리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장비업계는 과거와 달리 전세계 반도체·FPD 업계를 거래처로 확보하고 평가용으로 장비를 곳곳에 납품해 놓은 상태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올해 실적에 반영 가능한 수주가 추가될 수 있다.
국내 장비업계는 지난해 거의 모두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져 올해 다시 한 번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특히 몇몇 매출 선두권 업체는 올해 ‘2000억 클럽’ 가입이 무난한 것으로 전망됐으나, 하반기 발주 지연이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장비 특성상 미뤄진 발주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도체·FPD 장비업계는 매출 목표를 보수적으로 책정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이번 실적 하향 조정도 이 같은 업계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회사의 현 상황과 목표를 분명히 알림으로써 시장에서 믿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T·첨단기술업종 기업에 대한 평가는 수치상의 실적 이상으로 그 기업의 기술적 잠재력이 반영된다. 하지만 첨단 업종의 미래 기술에 대한 평가는 ‘장밋빛 비전’이 아니라 그 기업이 보여 준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아프지만 발빠르게 시장에 자신의 현실을 공표한 장비업계. 이는 장기적 회사가치인 ‘기술잠재력’에 대한 신뢰를 지켜내는 힘이 될 듯싶다.
디지털산업부·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