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안 됩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의 자존심이니 초일류기업이니 칭찬 일색이더니 요즈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온라인 토론방에는 심지어 ‘없어져야 하는 기업’이란 글까지 올라 옵니다. 무노조 경영을 박살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정경유착의 산실,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등 내용도 다양합니다.”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과 사석에서 오간 대화의 한 토막이다. 삼성맨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엄격하고 치열한 내부경쟁에, 인정사정 없는 조직이라 어떤 때는 이직 생각이 간절합니다. 바깥에서 말하듯 삼성의 정보와 시스템이 엄청난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가족이나 주변의 ‘최고기업에 다닌다’는 칭찬에 자부심 갖고 회사 다니는 겁니다.” 또 다른 삼성맨이 거든다. “삼성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삼성이 있게 한 직원들의 열정과 혼은 인정해 주세요.”
사실 치켜세움과 격려에 익숙한 삼성 직원들이다. 그들에게 요사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변한 ‘삼성 경계론’은 곤혹 그 자체다. 일부에서는 1등기업으로서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한다. 또 다른 부류에선 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인 삼성을 바로 봐야 할 시점이라고 한다. 어떤 논리이건 한국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 것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20%에 해당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영향력이다. 정치 권력을 제외한 그 어떤 경제·문화 권력도 외형상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집단은 없었다. 앞만 보고 성공 신화를 창출했지만 어느새 주변을 돌아봐야 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삼성맨들과의 짧고도 긴 대화를 뒤로 하고 책상에 돌아왔을 때 외신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포천지가 발표한 기업 평가였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순이익 94억1000만달러로 세계 IT기업 가운데 랭킹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러니다. 외국인들은 IT 세계 최고기업이라며 칭송하는 시간, 국내에선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의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아직 ‘때리기’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그간 신화에 가려져온 여러 치부가 공개될지도 모른다. 한 바탕 홍역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배구조나 문어발 경영이 문제라면 법으로 규제하면 그만이다. 무노조 고집 과정에서 법 위반하고 물의 야기하면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자. 그 와중에 로비가 있다면 차단하고, 하청업체 쥐어 짰다면 정부가 지도 감독하라. 기득권 이용해 시장 질서 흩뜨리면 공정위가 나서라. 내부 경영진이 판단을 잘못하면 곧바로 시장이 응징한다.
그러나 어느 삼성맨의 지적처럼 ‘직원들의 열정과 혼’까지 훼손하고 폄하해선 곤란하다. 밤샘 연구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개발하고, 휴대폰 만들어 목숨 걸고 해외에 내다 파는 직원들이 매도당하는 상황은 피하자. 그들의 업적이 지배구조나 정권의 도움, 노조의 유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 가족과 이웃, 나라가 그들의 열매를 따먹는다. 외국 한번 나가보면 삼성전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기업인에게 저절로 머리 숙이게 된다. 평생 ‘생산’ 한번 안 해본 채 ‘입’으로만 먹고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삼성전자가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 84년이다. 지난해 외형은 82조원. 20년 만에 덩치를 80배 이상 키우고 수익률 세계 1위를 달성한 제조업체가 또 어디 있을까. 이것은 온전히 수천 수만 임직원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것이다. 삼성은 아직도 약점 많고 위기상황에 내몰린 기업이다. 매를 들더라도 애정과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자.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직원들의 말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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