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이젠 평가를 제대로 하자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우리 사회가 정보통신에 이어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생명과학은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쌓인 기술적 자산이 이제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다.

 국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보면서 그 나름대로 뿌듯함도 있지만 늘 한 구석을 허전하게 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지병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재발이다. 어차피 대규모 시설사업인 망 사업자는 예외로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IT산업은 소규모로는 시장에 진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단말기 제조업 위주다. 생각해 보면 IT 강국이라는 스스로의 표현에 걸맞은 콘텐츠 산업에도 내로라하는 국제적 수준의 업체가 있을 법하고, 게다가 IT의 두뇌이고 감각기관인 소프트웨어 산업은 꽤 넓은층의 중견 이상 기업군이 존재할 때도 되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몇몇 콘텐츠·소프트웨어 게임회사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업체는 손에 꼽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래 먹거리라는 IT839도 잘 들여다 보면 결론은 역시 단말기 산업이다. 부가가치와 진입장벽이 높은 IT 분야는 찬밥이고 늘상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IT산업만 비대해진, 지식산업국가 모델이 아닌 제조산업국가 모델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융통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작은 규모에서라도 탄탄한 부가가치와 높은 수준의 고급인력 고용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정부로부터 외면당해 왔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기업의 처지에서는 궁극적인 상품화와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자본시장이나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속된 비판과 시행착오를 통해 IT839도 수정된다고 하고, 벤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담보 지원도 늘린다고 한다. 투자회사들도 가능성 있는 기업의 발견에 관심은 높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술담보 지원도 지지부진하고 투자자들은 아직도 이미 시장에서 성공해 현금흐름이 눈에 보여야면 투자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평가다. 지금 우리의 IT기업들은 투명성 부족과 투자담당 정부조직이나 투자회사들의 기술기업 평가능력의 부재 때문에 필요한 수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투명성 부족은 일부 기업윤리 없이 행동해 온 기업인들로 인해 야기돼 시장이 진정한 우량기업을 가리기 힘들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올바른 투자를 해야만 하는 해당 부처나 투자회사들은 아직 성장의 초기단계인 상태에서 기술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 기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드문 상태에서 어떻게 단시간 내에 이를 가능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몇 가지가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 단위에서 기업가치 평가에 관한 전문성, 범용성, 체계성 있는 템플릿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실성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러한 템플릿은 그동안 여러 목적으로 개발해 온 여타 평가모델과 같이 몇 쪽짜리 절차도가 아니라 적용 상황과 개별 산업, 시장 상태 등에 따라 범용적으로 이용 가능해야 하며 실제로 적용했을 때 상장된 기업이라면 현재 주가흐름과 일관성을 보이는 정확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현재 자산가치와 미래가치의 합이라는 어정쩡한 설정은 정밀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템플릿의 개발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IT 산업이 오래되고 기업가치 평가가 일반화된 여러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템플릿은 투자전문기업별로 개발하고 사용되는 내부 지식정보라고 볼 수 있다. 재무 및 금융 전문가 위주로 편성된 국내의 평가기관이나 투자회사들도 이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국가 경제적으로도 효율적 자원 배분이라는 경제 운영의 소기의 목적을 미래지향적으로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를 통해 가능성을 가진 국내의 기술 벤처들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에 관계없이 세계적 수준의 도약을 이루는 실례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부 교수 bckim@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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