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거시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공직생활과 유학시절
나의 공직생활은 1973년 시작됐다. 24살에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과학심의회의와 경제기획원에 14년간 몸담았다.
경제기획원 기획국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했고 경제기획원 예산실에 있을 때에는 예산 총괄 사무관으로 당시 예산실장 문희갑씨(전 대구시장), 예산총괄과장 한이헌씨(전 청와대 경제수석)와 함께 동결예산 편성을 통한 제로베이스 예산이라는 신개념을 확립하기도 했다.
또 정책조정국 산업3과장 시절에는 부실기업 정리와 해운산업 및 해외건설 산업합리화 조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훗날 기업을 경영하면서 부실기업 회생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게 된 것도 사실은 이때 부실기업을 정상화하는 나만의 노하우를 쌓은 덕분이 아닐까 싶다.
공직생활 중에 유학이라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사무관 시절, 공무원 해외연수 첫 회에 유학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무엇보다도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내와 딸과 함께 떠나는 낯설고도 먼 땅, 미국 유학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교통업무를 맡고 있던 내게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이었던 김재익 수석이 교통경제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TC(Transportation Center)에서 선진 교통정책에 대해 심도있게 배우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필요한 교통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적극 추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미국 유학생활은 예상한 대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16명으로 구성된 팀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언어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질감에서 오는 장벽도 높게만 느껴졌다.
한국에서 편한 생활을 뒤로하고 왜 고생하는지, 새벽에 도서관에서 불을 밝히며 공부하며 여러 번 후회도 했고 낙담도 했지만 그래도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여러 가지로 막막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행운이었고 가족과 이렇게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리고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벽은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던 유학생활이 역으로 축복같이 느껴졌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결국 팀원 16명 중 유일하게 혼자 졸업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그 팀에서 몇 년간 TC를 졸업한 사람이 없었다는 후문을 듣고 나니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힘든 유학생활이었지만 어려운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기회가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시간을 쪼개어 아내와 한 달간 동과 서를 가르는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다. 공부만으로는 막연하게밖에 알 수 없었던 미국이라는 나라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이렇게 용기를 내어 선택한 유학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이때 갖춘 글로벌 감각은 공직생활뿐만 아니라 그후 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생은 내가 예측하고 원하는 일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왔을 때 결단을 내리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더라도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한다면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어느 새 현실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ceo@tysystems.com
사진: 노스웨스턴대학 유학시절 교내 도서관 앞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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