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유희적 노마드

 디지털시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신조어 가운데 하나가 노마드(nomad)일 것이다. 원래 이 말은 1968년 철학자 들뢰즈에 의해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정의되면서 현대 철학의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노마드가 이 시대를 정의하는 상징어로 쓰인 것은 1997년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에 의해서다. 그는 한국에서도 출간된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장비로 무장한 현대인들의 종잡을 수 없는 성향을 디지털 유목민(디지털 노마드)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정의는 네티즌의 성향에 국한된 비교적 초보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요즘의 노마드에 대한 정의는 디지털 장비의 무장 여부나 인터넷 서핑 성향과는 무관하게 호모 노마드로 확대됐다. 기존의 유목민과 정착민에 대한 구분 없이 모든 인간을 노마드로 편입시킨 것이다. 가령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목민은 불·언어·예술·종교·시장·민주주의 등을 만들었고, 정착민은 국가(정부)·세금·감옥(법)·무기(군사) 등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그러나 호모 노마드에서 인간은 인프라 노마드, 자발적 노마드, 유희적 노마드라는 세 부류로 나뉜다. 자크 아탈리의 2005년식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인프라 노마드는 노숙자·이주노동자·외판원 등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자발적 노마드는 공무원·경찰·군인·농부·법률가·교사, 즉 이전의 정착민 개념에 해당하는 부류다.

 더욱 의미 심장한 부류는 유희적 노마드다. 이 부류에는 고급연구원·음악가·화가·배우·스포츠스타·관광안내원 등이 속한다. 한마디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계층이다. 미래 사회에서 유희적 노마드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 위상이나 영향력 역시 어느 국가경쟁력못지 않게 클 것이고 실제로 이런 현상은 지금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콘텐츠산업을 육성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콘텐츠를 진정한 차세대 먹거리가 되게 하려면 이런 유희적 노마드에 대한 정의와 평가부터 확실해져야 할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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