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평행선이다.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했다. 말만 잡풀처럼 무성하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논의가 그렇다. 한마디로 공익론과 산업론이 활시위처럼 팽팽히 맞서 있다. 방송은 공익성과 공공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통신은 다르다. 산업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우선한다. 이 두 논리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다. 그 핵심은 통·방 융합 기구개편이다. 간단하고 쉬울 리 없다. 더욱이 각자에 딸린 식구가 얼마인가. 방송은 4만여명이고, 통신은 18만여명이다. 많고 적음을 떠나 각자의 이해가 걸린 일이다. 해법이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할 수밖에 없다.
양측은 융합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에는 일치한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가능한 한 빨리 통합기구를 발족시켜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진전이 없다. 일부에서는 융합은 물 건너갔다는 소리도 나온다.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가자는 길은 정반대인 까닭이다.
통신 쪽 주도냐 아니면 방송 쪽 주도냐를 놓고는 양보가 없다.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답보상태다 보니 쟁점만 하나씩 늘고 있다. 당장 IPTV 서비스를 놓고도 양측의 견해가 엇갈린다. 방송위는 IPTV를 별정방송으로 규정한다. 정보통신부는 부가통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업자들은 IPTV를 초고속인터넷의 뒤를 이을 신성장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서비스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양측의 의견은 평행선이다. 지난 21일에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노성대 방송위원장이 고위 간부들과 함께 만나 3시간여 동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소득은 별로 없었다. 8월 초에 다시 만나 현안을 논의하자는 선이었다. 양측이 자주 만나 해답을 찾자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총리실 산하에 통신·방송 구조개편 TF가 구성돼 있지만 이 기구를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산하로 해야 한다는 방송위 측과 총리실 산하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정통부 방침이 맞서 있다. 방송위가 민간기구인만큼 대통령 산하가 타당하다는 게 방송위 주장이다. 정통부는 일단 총리실에서 합의점을 찾은 뒤 대통령의 최종 결심을 받자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이처럼 안건마다 대립하다 보니 편들기 현상도 없지 않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지식과 소신에 따라 타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옛말에도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일방의 훈수는 일을 꼬이게 할 수 있다. 그동안 국회나 학계 등에서 마련한 통·합 융합에 대한 세미나나 포럼 등만 해도 20여 차례다. 국회의원들이 현재 ‘방송과 통신 구조개편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기구 개편과 규제 패러다임에 대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제안할 수 있는 방안은 다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통·방 융합 논의의 핵심은 누가 통합의 주체가 되느냐가 아니다. 기술융합을 산업적·경제적 영역과 접목해 새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목적이다. 국가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하고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일이다. 국민은 어떤 형태의 기구개편이 이 같은 정책목표를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이다. 통합의 대상인 해당 기관이나 협상 당사자들에게는 큰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멀고 깊게 봐야 한다. 자신의 이해에 충실하면 역사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통·방 융합 기구개편은 국가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이 일이 지루한 장마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디지털TV 전송방식을 놓고 몇 년 간 논쟁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잃은 게 많았다. 통·방 융합으로 가는 길이 편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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