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중국의 미국 기업 사냥

 국제기획부 장길수 부장 ksjang@etnews.co.kr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업 사냥이 미·중 관계에 새로운 냉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와 섬유 분쟁으로 대치하던 양국 관계가 중국의 기업 사냥으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감마저 든다.

 이번 중국 기업들의 기업 사냥은 아직 양국 정부 간 정면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얼마든지 분쟁으로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이는 레노버가 IBM PC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미 행정부 내 외국투자위원회(CFIUS)는 공화당 의원들의 문제 제기에 따라 레노버의 IBM PC부문 인수가 미국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사했다. 결국 인수를 최종 승인하기는 했지만 미국 입장에선 결코 뒷맛이 개운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사냥은 막 전주곡을 울렸을 뿐이다. 최근 하이얼과 중국해양석유(CNOOC)가 각각 미 가전업체 메이택과 석유기업 유노컬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미국 쪽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이는 중국 기업의 세계 시장을 향한 야망과 미국의 안보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중국해양석유의 유노컬 인수 선언이 미국인의 애국심에 불을 지핀 꼴이 됐다.

 확실히 중국 기업들의 해외 인수 전략은 훨씬 정교해졌고 국가기간산업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인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이얼의 경우 미국 내 부정적 여론을 희석하기 위한 전략인 듯 미국 사모펀드업체인 블랙스톤과 베인캐피털을 끌어들였다. 단독 인수보다는 미국 투자 기업과 공동 보조를 취하는 게 모양새가 좋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간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미 투자기업 리플우드를 제치고 메이택을 인수,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할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 가전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의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터라 미국인의 신경은 더욱 곤두설 수밖에 없다.

 에너지 기업인 유노컬 문제에 이르면 국가 안보에 대한 미국의 조급증은 더욱 심해진다. 유전 개발과 석유 수입처 확보에 국가 안위가 걸려 있는만큼 당연한 반응이다. 중국해양석유는 현재 미국 석유기업인 셰브론보다 솔깃한 조건을 제시하며 유노컬 인수전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확보가 시급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정작 미국 입장에선 IBM의 PC부문에 이어 기간산업인 석유기업까지 중국에 넘겨줘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의회는 최근 중국해양석유가 유노컬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가적인 재앙’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며 CFIUS에 적정성 여부를 심사해 줄 것을 미리 요청해 놓고 있다.

 물론 미국 여론이 이런 쪽에만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과민반응이란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미국이 중국에 자본 시장을 개방하라고 촉구해 온 마당에 중국 자본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길을 막는 것은 위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중국의 시장 경제가 국가 주도의 ‘중국주식회사’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같은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중국 대기업 대부분이 국유 기업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잘 드러낸다. 중국 기업들이 제아무리 미국이나 홍콩 증시에 주식을 상장하더라도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때문에 미국 내 주요 여론은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업 사냥이 80∼90년대 일본 기업들의 미국 부동산 및 기업 인수 열풍을 연상시킨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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