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정보산업육성과 국가CIO

지난달 열린 디지털포럼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한국이 세계 최초의 인쇄술과 최고의 IT기술로 인류에 두 번이나 크게 이바지했다”며 우리 IT산업의 발전상을 극찬했다. 900여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류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우리나라가 IT분야에서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업분야뿐만 아니라 정부, 학교, 가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정보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바탕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정보화정책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전자정부 부문에서 세계 5위의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될 만큼 국가정보화 수준을 향상시켰다.

 사실 그동안 정보화정책은 수요 창출에 초점을 맞춰 인프라를 갖추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IT산업의 신규 시장과 콘텐츠, 관련기기들을 우리 기업들이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즉 중소기업 ERP시장을 조성했다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ERP회사를 육성하고, 세계적인 전자정부를 구현했다면 전자정부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우리 기업이 나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IT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삼는다고 하면서 아시아권에서조차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 IT기업이 없는 상황을 돌이켜봐야 한다. 더구나 공공기관 및 민간에서 사용하는 SW와 HW의 낮은 국산화 비율을 살펴보면 세계적인 IT인프라를 바탕으로 IT기업, SW기업을 키워야 할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IT산업의 화두는 컨버전스다. IT가 기존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일상생활도 크게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사회,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컨버전스가 이뤄지면 정부 입장에서는 각 부처에서 진행되는 정보화사업이 중복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각 부처는 고유의 핵심역량 강화에 몰두하고 정보화분야에서 공통되는 요소들은 이를 담당하는 부처가 총괄, 전략적으로 IT기업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 자동차회사가 볼트에서부터 타이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품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정보화정책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분업과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각 부처의 정보화계획과 추진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지휘하고 조정하는 업무를 담당할 국가CIO가 필요하다.

 오늘날 정보화 강국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미국도 클린턴 정부 발족 직후 고어 부통령이 스스로 CIO가 되어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선언, 각 부처의 정보혁신과 IT산업의 육성을 일궈낼 수 있었다. 기업도 CIO 직제를 도입하여 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효과를 본 사례가 많다.

 기업이든 국가든 정보화의 수준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CIO의 도입은 필수적이다. 국가정보화를 총괄할 수 있는 수장이 하루라도 빨리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행정업무 혁신이라는 국정철학과 더불어 IT 신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CIO가 정부 각 부처의 정보화 정책을 조정하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혁명을 제2의 국가개혁으로 삼았던 영국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보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총리 직속으로 전자상거래 담당차관(e-Minister)과 특사(e-Envoy)직을 신설, 각 부처의 정보화정책 이행 상황을 감시·감독하는 권한을 부여하여 국가 정보화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보수당에서 IT장관직 신설을 제안하고 있는 이유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도 총리 직속의 전자행정개발국을 신설하여 국가정보화프로젝트(ADELE)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국가CIO를 중심으로 정부부처의 정보화정책에서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면서 부처 간 공통된 분야, 집중해야 할 분야를 파악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국가CIO를 중심으로 정부의 산업정책이 자원관리뿐만 아니라 민간시장에 파급효과를 유발하도록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hjko@softwa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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