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U를 중심으로 역내에 수입되는 전자제품 및 부품에 대한 환경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전기·전자 폐기물처리지침(WEEE)을 시작으로 특정유해물질 사용제한지침(RoHS), 폐자동차처리지침(ELV), 친환경설계지침(EuP), 신화학물질관리정책(REACH) 등이 줄줄이 발효될 예정이다.
이러한 규제에 따라 자동차는 이미 지난 2003년 7월 1일부터 납, 수은, 크로뮴, 카드뮴 등의 사용이 금지됐으며 내년부터는 재활용률이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폐 전기·전자제품의 70∼80% 회수 의무가 오는 7월부터 부여되며 재활용 의무 및 4대 중금속과 브로민계 난연제(PBBs·PBDEs)의 사용도 2006년부터 금지된다.
또 에너지 사용 제품의 친환경 설계 규정, 1000톤 이상 사용 화학 물질의 등록의무 등도 발효를 앞두고 있어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EU지역에 수출하는 총액의 70%인 151억달러 규모가 환경규제 대상이며, 이 중 전기·전자제품의 비중은 약 30억달러로 추산된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환경규제에 적절하게 대응을 못하면 세계시장에서 수출경쟁력 상실은 물론이고 수만개의 관련 부품·소재업체의 안정적 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EU회원국들은 이 규제의 시행에 맞추어 부품·소재 유해물질 함유에 대한 정보공개를 한층 더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향후 우리나라 수출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생산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노키아·마쓰시타와 같은 글로벌 전자업체들도 RoHS에 규정된 6대 물질 이외에 PVC, 기타 할로겐 난연제의 규제를 통보하는 등 유해물질 규제압박을 가속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EU의 환경규제를 이용한 기술장벽에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나 그간 기술표준원과 삼성전자·LG전자·삼성SDI·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산·학·연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방안을 긴밀히 협의했고 문제의 핵심인 시험분석방법 표준화를 위해 함께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주요 수출품과 수많은 관련 부품의 유해물질 분석방법에 대한 전기·전자 국가표준(KS) 8종 및 자동차 부품관련 유해중금속 분석방법 70종을 제정하였다.
이 표준이 제정됨으로써 관련기업들은 어느 제품에 얼마나 유해물질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 환경규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중소기업들도 유해물질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친환경설계기술 개발, 대체재료 및 신기술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새로워진 환경 규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철저히 대응하느냐다.
어차피 앞으로 선진 각국은 환경보호는 물론이고 자국 산업보호 측면에서 더욱 환경규제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다행히 국내 기업들의 최대 경쟁업체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기업들의 경우 환경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늦은 편이다. 따라서 이에 먼저 대비할 경우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술 표준원은 이미 제정된 전기·전자제품 8종 및 자동차 부품 70종의 규격과 더불어 2006년에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LCD·PDP·자동차 신제품 등 첨단 신소재의 표준시험분석방법을 개발해 추가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전기·전자 및 자동차 분야 표준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우리는 산업의 환경친화성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관련기업들은 세계적인 유해물질 규제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 대응하는 것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요건임을 인식하여 환경친화적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
환경 장벽을 뛰어넘는 기업만이 새로운 미래가 있다.
◆김선호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기간산업기술표준부장 ksh@a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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