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 생애 가장 큰 행운
사람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들의 삶을 좌우하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기 스스로 선택해 결단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많은 ‘만남’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그야말로 선택을 해야 할 일이 대단히 많다. 예를 들면 배우자의 선택, 전공과목의 선택, 사회에서 직장의 선택 등 수많은 선택을 통해서 인생을 고민하고, 성장 발전하며, 때로는 좌절하고 그것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살아간다.
지난 4월에 27년간의 원자력연구소 생활과 6년간의 소장직을 마감하면서 지난날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원자력과의 만남이 내 생애 가장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나름대로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978년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대학이냐 연구소냐 하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당시 원자력은 내게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분야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했던 것도 사실이다.
79년 3월에 처음으로 대덕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초라한 실험시설과 너무나 작은 연구비에 많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할 연구원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보고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10·26사태로 국가는 물론 원자력은 큰 시련을 겪게 됐다. 그것은 국내외로부터 원자력연구소의 문을 닫으라는 압력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연구원들은 사기를 잃고 외국으로 혹은 대학으로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외압에 의해서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질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명칭을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때, 연구원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실망과 좌절 그리고 충격과 분노뿐이었다. 이때가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단을 해야 했던 때일 것 같았다. 대학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연구소를 지킬 것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다행히도 90년에 지금의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이름을 다시 되찾았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일이 있다고 한다. 할 수 있어서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 꼭해야만 하는 일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자립도 누군가 꼭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너지 자립은 곧 에너지 안보로써 국가의 안보와 같다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원자력에 의한 에너지 자립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대학으로부터의 유혹도 많았지만 아내가 대학으로 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고, 또 그 당시 한필순 소장과의 만남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4 반세기 전 이 땅에 원자력발전 기술은 전무한 상태였지만 그동안 연구소 임직원의 조국애와 열정이 핵연료 국산화, 한국표준형 원자로 개발,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 개발 등을 통해서 한국의 원자력발전 기술을 선진 G-6에 진입시킬 수 있었다. 그 일에 작은 힘이지만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 최대의 행운이었다.
원자력과 함께 한 삶을 통해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우리도 할 수 있고, 우리도 일등국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지금까지 정부에 권유하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원자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져 달라는 것뿐이다. 현재 40%의 원자력발전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려야만 현실로 다가온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원자력은 후손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잘 보존하고 원자력 기술자립을 꼭 이루어야 할 것이다.
ischang@kae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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