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용우소프트의 왕원징 회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지난 23일 입국해 26일 떠났으니 3박 4일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이었다. 이번 왕 회장의 방한은 용우소프트와 국내 ERP업계가 공동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왕 회장의 3박 4일 방한을 되씹어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더욱이 ‘이 개운치 못한 맛’의 원인이 왕 회장보다는 우리에게 있어 더욱 쓰다.
왕 회장은 방한 첫날 ‘한국의 우수한 ERP 솔루션을 엄선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일 수도 있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왕 회장이 밝힌 한·중 협력 구상이 이제까지 국내에 알려진 내용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데 따른 반응이었다. 당초 국내에서는 ‘용우소프트가 한국의 우수 ERP를 발굴해 중국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판매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이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왕 회장이나 용우소프트 측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사전에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결국 ERP협의회나 국내 업계가 ‘미리 김칫국을 마신 꼴’이 됐다. 왕 회장은 떡 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업계는 그 떡의 크기와 종류까지 예단했다. 기대에 부풀어 호들갑을 떨다가 왕 회장의 한 마디에 찬물을 뒤집어 쓴 셈이다.
갑자기 몇 년 전에 방영했던 TV 드라마 상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중국의 상인들은 임상옥이 내놓은 고려 인삼의 품질이 매우 좋은 것을 알면서도 값을 깎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임상옥은 인삼을 불태워 버리는 묘책을 생각해 내고 결국 중국 상인들은 비싼 가격에 고려 인삼을 사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국산 ERP를 고려 인삼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산 ERP가 임상옥 시절의 고려 인삼만큼 중국 상인에게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용우소프트와 협상을 해야 하는 국산 ERP업계에 임상옥의 중국 공략 전술은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 절판이 되겠지만 최인호 원작의 ‘상도’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컴퓨터산업부·이창희 차장@전자신문, chang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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